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6.3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은 다양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전남 농업에 대해서도 “생산에서 소득 중심으로 전환”과 같은 방향이 반복된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상당수 공약이 현재의 농정을 실패로 규정하고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들여다보면 추상적인 표현이 많다. “고부가가치 품목 육성”, “고소득 작물 전환”, “유통 구조 개선”, “수출농 육성”, “가공산업 확대” 같은 문장은 방향을 말할 뿐, 조건과 결과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의 전남 농업 구조는 단순히 낡아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의 크기, 시대적 상황, 노동력 사정, 재배 여건, 유통 환경이 맞물리며 형성된 결과다. 이 구조를 바꾸려면 먼저 왜 이렇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그 과정 없이 구호부터 내세우면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고부가가치 품목은 단가가 높아 보이지만 시장 크기가 작은 경우가 많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재배면적이 늘어나면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므로 재배 면적이 많은 벼 대체 작목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가공산업도 마찬가지다. 부가가치가 높다는 말은 맞지만, 원료 확보, 시설 투자, 인력, 위생 관리, 판로가 함께 갖춰지지 않으면 비용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유통 혁신 역시 모든 품목에 적용되는 만능 해법은 아니다. 직거래와 온라인 판매는 의미가 있지만, 품목 특성, 물량과 품질의 안정성, 운영 역량이 전제되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모델이다. 전남 농업에서 실제로 얻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몇 가지 경영 및 정책 모델을 만들고, 이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1모델은 식량작물 중심의 안정형, 2모델은 원예·특용작물 중심의 수익형, 3모델은 생산·가공·체험을 결합한 복합형으로 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각 모델에 대해 시장 규모, 예상 매출, 비용 구조, 노동력 투입, 가격 변동성, 투자 회수 기간, 고령농 적합성, 청년농 진입 가능성 등을 수치로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무엇이 유리하고, 무엇이 위험한지,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지가 보인다. 공약도 그때 비로소 설득력을 갖는다.
이 과정에는 메타 분석적 접근이 필요하다. 몇몇 성공 사례를 나열하는 방식으로는 기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내외 사례를 유형별로 묶고, 어떤 조건에서 성공했는지를 공통 요소 중심으로 정리해야 한다. 시장 규모가 작은 품목은 어떤 조건에서 유지되는지, 고령농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는 어떤 방식이 안정적인지, 가공산업은 어느 수준의 물량과 인력이 확보될 때 수익성이 생기는지를 비교하고 수치화해야 한다. 그래야 해외 사례도 구경거리가 아니라 적용 가능한 기준으로 바뀐다.
여기에 전남의 실제 데이터를 결합해야 한다. 품목별 재배 면적과 소득률, 가격 변동 폭, 연령대별 노동력 구조, 유통비 비중, 가공 가능 물량, 지역별 관광 연계 가능성 등이 함께 분석되어야 한다. 같은 전남이라도 평야지대와 산간지대, 고령농 밀집 지역과 청년농 유입 지역은 조건이 다르다. 하나의 공약으로 전체를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결국 정책과 공약이 현실성을 가지려면 “무엇을 육성하겠다”라는 선언이 아니라 “어떤 조건의 농가에 어떤 모델이 맞고, 그 경우 예상되는 소득과 위험은 어느 정도인가”를 수치로 보여주어야 한다. 1모델, 2모델, 3모델의 장단점과 기대 효과를 제시하고, 그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정책이고, 그것이 행정이다.
반대로 수치와 조건 없이 고부가가치, 고소득, 첨단화, AI, 가공산업 같은 단어만 반복하는 공약은 현장에서는 공허하다. 농업은 말로 움직이지 않는다. 시장의 크기, 생산량의 변화, 운영 비용, 노동력의 한계, 농민의 역량을 함께 놓고 계산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통계와 분석, 예측이 정밀해진 시대다. AI를 말하면서도 실제 분석과 시뮬레이션에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책이 아니라 구호에 머문다.
전남 농업의 미래는 방향이 아니라 계산 위에서 결정된다. 무엇을 키우겠다는 선언보다, 어떤 조건에서 얼마의 소득이 만들어지는지를 따져야 한다. 추상적 문장을 넘어 데이터와 분석, 수치로 말하는 농정으로 전환할 때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고방식이며, 이러한 기준을 가진 사람이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해야 한다. 그래야 농정이 기대가 아니라 근거 위에서 움직인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6. 전남광주통합시대 농업, 순환경제 구조를 설계할 때.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6.3.10.).
허북구. 2026. 전남농업, 조립공장이 아닌 자립형 산업 생태계로 거듭나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6.2.13.).
허북구. 2026. 전남·광주 통합, 농업의 미래를 빅데이터로 먼저 시뮬레이션해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6.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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