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소멸되고 있는 전남 지역 고유 음식재료와 조리기술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2026-04-08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시골의 길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한때 국도를 따라 달리면 자연스럽게 면 소재지와 읍내를 지나게 되었고, 그 길 위에서 사람과 음식이 만났다. 차를 세워 국밥 한 그릇을 먹고, 시장에서 제철 식재료를 사는 일은 이동의 일부였다. 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지역의 생활과 음식이 이어지는 자리였다.

 

지금은 외곽도로가 마을을 비켜 간다. 목적지에는 더 빨리 도착하고, 지역민들은 도로로 인한 공해와 위험으로 부터는 더 안전해졌지만, 그 과정에서 지역은 지나치지 않게 되었다. 면 소재지와 읍내는 ‘지나는 곳’에서 ‘찾아가야 하는 곳’으로 바뀌었고, 사람의 흐름이 끊기면서 식당과 시장도 함께 약해졌다. 여기에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겹치며 지역 음식의 기반은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얼마 전 장거리 이동 중 화순의 한 면 소재지를 일부러 들렀다. 예전에 찾았던 작은 식당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반찬이 나왔다. 들깨가루에 젬피가루를 더한 무침, 방앗잎 향을 살린 부각은 재료만이 아니라 다루는 방식이 달랐다. 들깨는 볶는 온도에 따라 향이 달라졌고, 젬피는 넣는 타이밍에 따라 음식의 균형이 바뀌었다. 방앗잎 역시 언제, 어떤 상태로 더하느냐에 따라 맛의 깊이가 달라졌다.

 

그러나 다시 찾은 그 식당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예전에 방문했을 때 식당주인은 아주 고령자분이 아니었고, 손님들도 상당히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길이 바뀌면서 손님이 끊겼고, 남은 주민만으로는 가게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한 식당의 폐업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곳에서 쓰이던 재료와 조리 방식도 함께 사라진다.

 

전남의 음식은 재료와 기술이 분리되지 않는다. 들깨, 젬피, 방앗잎과 같은 향신성 재료는 지역마다 쓰임이 다르고, 그 비율과 순서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낸다. 이 차이는 레시피가 아니라 손의 감각에서 만들어진다. 반복 속에서 익힌 온도, 타이밍, 섞는 방식이 쌓여 하나의 음식이 된다. 재료가 같아도 결과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 두 축이 동시에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재료는 수요가 줄면서 생산이 줄고, 조리기술은 그것을 이어온 사람이 줄면서 전승이 끊긴다. 특히 고령화는 단순한 인구 문제가 아니라 기술의 단절로 이어진다. 재료는 다시 키울 수 있지만, 손으로 익힌 조리기술은 쉽게 되살리기 어렵다.

 

또 하나의 변화는 음식의 생활성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가정과 식당에서 자연스럽게 쓰이던 재료와 방식이 이제는 체험이나 특별한 메뉴로만 남아 있다. 일상에서 반복되지 않는 음식은 기억에서 빠르게 멀어진다. 이는 음식의 감소를 넘어 지역의 감각과 생활 방식이 흐려지는 과정이다.

  

이러한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생산만이 아니라 사용의 자리가 함께 유지되어야 한다. 재료를 재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쓰는 식당과 프로그램이 살아 있어야 한다. 치유농업이나 농촌관광과 연계해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 과정을 경험하는 방식으로 확장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직접 만지고, 향을 맡고, 과정을 따라가는 경험은 단순한 소비보다 오래 남는다.

 

길이 바뀌고 사람이 줄어들면서 사라지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그 지역에서 이어지던 재료와 조리 방식, 그리고 그것이 자리 잡고 있던 생활의 흐름도 함께 줄어든다. 전남 음식의 고유성은 특별한 메뉴가 아니라 일상 속 반복에 있었다. 다시 이어가기 위해서는 기록을 넘어서 실제로 만들어지고 먹히는 자리를 남겨야 한다. 그래야 재료와 기술도 함께 살아남는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6. 사라지는 전남 봄나물, 지켜야 할 우리의 밥상 유산.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6.3.12.).

허북구. 2026. 전남의 토종 식재료 농업과 음식.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6.01.21).

〈기사의 무단 전제나 복제를 금합니다〉

최신 기사

포토뉴스

지역권뉴스

메뉴 닫기

주소를 선택 후 복사하여 사용하세요.

뒤로가기 새로고침 홈으로가기 링크복사 앞으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