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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시대 전남 농산물, 섭취 용이성으로 재설계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2026-04-13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농산물은 오래도록 “잘 키워 잘 파는 것”이 중심이었다. 생산량과 품질, 외관과 가격이 핵심 기준이었다. 그러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 기준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단순하다. “이 농산물을 누가, 어떻게 먹는가”이다. 소비자의 연령 구조가 달라지면 농산물의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본은 이미 이 변화를 먼저 겪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농산물을 ‘그대로 공급하는 대상’이 아니라 ‘먹을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가 추진한 ‘스마일 케어 식단(スマイルケア食)’이다.

 

스마일 케어 식단의 핵심은 단순하다. 음식의 맛이나 영양 이전에 “먹을 수 있는 상태인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를 위해 식품을 씹기 쉬운 단계, 쉽게 삼킬 수 있는 단계, 거의 씹지 않아도 되는 단계 등으로 구분하고, 소비자가 자신의 상태에 맞는 식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표시 체계를 만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식품의 ‘형태와 물성’을 기준으로 재설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농산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본에서는 채소를 단순히 신선하게 공급하는 것에서 나아가, 부드럽게 가공하거나 형태를 유지한 채 연화시키는 기술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당근이나 호박은 원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숟가락으로 쉽게 으깨질 정도로 부드럽게 처리된다. 겉모양은 그대로지만 내부 구조는 전혀 다른 식품으로 바뀌는 것이다. 농산물이 ‘재료’에서 ‘기능성 식품’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유통 방식이다. 일본의 고령자 식품은 일반 소매보다 요양시설, 병원, 재가 배달을 중심으로 유통된다. 즉, 농산물은 시장에서 소비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생활 공간으로 직접 들어가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이는 생산과 유통이 분리된 구조에서는 대응하기 어려운 변화다.

 

이러한 일본의 사례는 전남 농산물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전남은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지역 중 하나이며, 동시에 농업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즉, 생산자와 소비자가 동시에 고령화되는 구조 속에 있다. 이 상황에서 단순한 생산 확대나 판로 확보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첫째, 농산물의 기준을 ‘품질’에서 ‘섭취 가능성’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단단하고 저장성이 좋은 농산물이 아니라, 부드럽게 가공하기 쉽고 소화가 용이한 농산물이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 품종 선택과 재배 방식도 이러한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가공을 전제로 한 농업 구조가 필요하다. 현재 전남 농산물의 상당 부분은 원물 형태로 유통된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에서는 원물 소비가 줄어들고, 가공식품의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농가 단위에서는 어렵더라도, 지역 단위에서 공동 가공 시스템을 구축하고, 부드러운 식품이나 연하식(軟化食) 형태로 전환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셋째, 유통의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 고령자는 시장을 찾아가기보다 서비스를 통해 식품을 공급받는 비중이 높다. 따라서 농산물은 단순히 도매시장이나 온라인 판매를 넘어서, 요양시설, 복지기관, 재가식 서비스와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농산물이 ‘식재료’에서 ‘서비스의 일부’로 들어가는 변화이기도 하다.

 

넷째, 치유농업과의 연계 가능성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령자는 단순한 영양 공급뿐 아니라 정서적 안정과 관계 경험을 함께 필요로 한다. 전남이 보유한 농촌 자원과 음식 문화는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즉, 농산물은 먹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경험을 만드는 매개가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고령화 시대의 농업은 생산 중심에서 벗어나 “누가 먹는가”와 “어떻게 먹을 수 있는가”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일본의 스마일 케어 식단은 이 변화를 제도와 산업으로 연결한 사례이다. 전남 농산물도 이제 잘 키운 농산물을 어떻게 더 많이 팔 것인가가 아니라, 변화하는 소비 구조 속에서 어떻게 ‘먹을 수 있는 농산물’로 전환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대응책을 마련해 고소득과 연계시켜야 한다.

 

참고문헌

添野覚. 2017. スマイルケア食の現状と展望. 砂糖類・でん粉情報. 砂糖類・でん粉情報 5:2-7.

허북구. 2023. 고령화 사회와 채소.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3.07.19.).

허북구. 2022. 농촌 노인을 위한 대만의 그린케어.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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