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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려인마을, 연해주 독립유공자를 찾아서 ‘김동훈 선생’ 총을 들었던 청년, 역사로 돌아오다”… 고려혁명군 김동훈 삶 복원 2026-04-27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1937년 고려인강제이주 역사 속에 잊혀졌던 한 고려인 독립운동가의 이름이,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을 통해 다시 역사 속에 울려 퍼지고 있다.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함께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을 통해 열여덟 번째 인물, 김동훈(1897-1937) 선생의 삶을 재조명한다고 밝혔다.

김동훈 선생은 1897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나, 국권을 상실한 시대의 아픔 속에서 조국 독립이라는 한 길을 선택했다. 그는 더 넓은 투쟁의 무대를 찾아 연해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항일 무장투쟁의 전선에 몸을 던졌다.

선생은 러시아 연해주에서 조직된 고려혁명군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이 부대는 3·1운동 이후 노령과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세력이 연합해 결성된 조직으로, 항일 무장투쟁의 중심축이었다. 


특히 김동훈 선생은 1920년 9월 러시아 스보보드니(자유시)에서 고려혁명군에 입대해, 이듬해인 1921년 제2기관총대 중대장으로 활동하며 독립군 전력 강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혹독한 추위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군사·정치 훈련에 매진하며 항일투쟁의 기반을 다져 나갔다.

그러나 독립을 향한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고려혁명군은 자유시참변이라는 비극을 겪으며 큰 타격을 입었고, 이후 이르쿠츠크로 이동해 재정비에 들어갔다. 김동훈 선생 역시 후방에서 조직을 재편하고 훈련을 이어가며 다시 싸울 날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또 한 번의 거대한 역사적 비극 앞에서 멈춰야 했다. 1937년, 소련 스탈린 정권은 일본과의 외교적 긴장 속에서 극동 지역 고려인들을 잠재적 위험 세력으로 규정하며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고려인 독립운동가들이 체포와 숙청, 그리고 강제이주의 비극을 겪었고, 이는 ‘고려인 강제이주’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김동훈 선생 역시 이러한 시대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했다. 그는 강제이주 과정 속 정치적 숙청의 흐름 속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한 청년의 삶은 그렇게 기록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끝내 잊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며 그의 희생과 헌신을 공식적으로 기렸다.

광주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김동훈 선생은 단순한 한 명의 독립군을 넘어, 눈보라가 몰아치는 낯선 타국에서도 조국을 잊지 않았던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며 “앞으로도 잊혀진 고려인 선조 독립운동가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그들의 삶과 정신을 오늘의 역사로 되살려 나가겠다”고 밝혔다.

광주 고려인마을이 이어가는 이 발굴 사업은 단순한 과거의 복원이 아니다. 그것은 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의 삶을 다시 부르고, 공동체의 뿌리를 되찾는 ‘기억의 여정’이다. 따라서 낯선 땅에서 총을 들었던 한 청년, 김동훈. 그의 이름은 이제, 그 후손들의 마을 공동체 광주고려인마을의 특별한 관심 속에 다시 살아나 잊혀진 가련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고려방송: 임용기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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