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바치고 끝내 일본군의 총탄 앞에서 생을 마감한 한 여성 독립운동가가 다시 역사의 조명을 받고 있다.‘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공동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을 통해 스물세 번째 인물로 김 알렉산드라(1885~1918) 선생의 삶과 항일독립운동 정신을 재조명한다고 밝혔다.
김 알렉산드라 선생은 러시아 연해주 추풍 영안평 출신으로, 연해주와 시베리아, 극동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다. 특히 독립운동과 노동운동, 사회주의 운동을 결합해 항일투쟁을 전개한 선구적 여성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선생은 1914년 말부터 고려인과 중국인 노동자 수천 명이 일하던 러시아 우랄지방의 뻬름스크 대공장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하며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에 힘썼다. 당시 언어 장벽과 차별 속에서 어려움을 겪던 고려인 노동자들의 고충을 대변하며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기를 맞아 러시아사회민주당에 참여한 선생은 뻬름스크 대공장의 고려인 노동자들을 대신해 각종 소송을 수행하며 승소를 이끌어냈다. 또한 나자구 무관학교 생도 출신 고려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우랄노동자동맹을 조직해 한인 노동자들의 권익 신장과 민족운동 기반 확대에 앞장섰다.
1918년에는 하바로프스크로 활동 무대를 옮겨 극동인민위원회 외교인민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 러시아 감옥에 수감돼 있던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의 석방운동을 전개하며 한인 독립운동 세력 결집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같은 해 4월 이동휘 선생 등과 함께 반일·반제국주의 사회주의 노선을 강령으로 채택한 최초의 한인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을 창립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또한 당 산하 출판기관인 보문사 운영을 위해 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사상 보급에도 힘썼다.
김 알렉산드라 선생의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18년 일본군이 시베리아와 연해주 지역에 출병하자 일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반제·반전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일본군 병사들에게 고함’이라는 호소문을 발표하며 침략전쟁의 부당성을 알렸다.
또한 한인 청년들을 모집해 한인사회당 적위군을 조직하고 일본군 및 백위군과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선생은 독립운동 자금 지원과 선전활동, 조직운영을 넘어 직접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한 보기 드문 여성 독립운동가였다.
그러나 1918년 9월 일본군과 백위군이 하바로프스크를 점령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체포된 김 알렉산드라 선생은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1918년 9월 16일 총살당하며 순국했다. 향년 33세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국가의 서훈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후손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광주 고려인마을과 고려신문은 김 알렉산드라 선생의 후손을 찾기 위한 자료 발굴과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에 힘쓰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각국에 흩어져 살아가는 고려인 사회를 대상으로 후손 탐문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김 알렉산드라 선생은 남성 중심으로 알려진 독립운동사 속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여성 지도자였다”며 “후손을 찾아 선조의 희생과 공헌을 알리고, 잊혀진 고려인 독립운동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 고려인마을은 고려신문과 공동으로 연해주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사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수십 명의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해 고려인 사회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있다.
고려방송: 이부형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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