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김덕현, 보성군의 보물
3단뛰기. 넓이뛰기 국내에서는 적수 없어
2012-02-13
장태일 기자 jnnews.co.kr@hanmail.net
넓이뛰기 국가대표 김덕현 선수가 보성출신이면서 광주광역시청 선수로 출전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보성군 체육계나 행정기관의 관내출신 선수관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현 국가대표인 김덕현 선수는 1985년 12월 8일 보성군 벌교읍에서 태어나 벌교 중앙초등-벌교 삼광중학-광주체고-조선대 체육학과를 졸업했다.
김 선수는 제 87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마(魔)의 17m' 훌쩍 넘는 17.07m의 한국신기록을 세워 체전 MVP로 뽑혔다.
김덕현 선수의 아버지 김용호씨는 “김 선수에 대한 어릴적 이야기에서 유치원 때부터 다른 아이들에 비해 월등한 기량을 선보여 달리기에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일등을 독차지 했으며, 공부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학교 간 대항이나, 군 대항 체육대회에서는 여지없이 일등을 독차지 하는 저력을 발휘했다”고 밝혔다.
그 후 김덕현 선수는 중학교에 진학한 후 2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육상선수로 입문하여 정식 훈련을 받으며 100m달리기와 멀리뛰기 선수로 활약 장래가 촉망 받는 선수로 주목 받다가 광주체육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그동안 100m달리기와 멀리뛰기를 했던 김 선수는 광주체고 2학년 때 세단뛰기 선수가 없던 체고의 권유로 종목전환을 제의 받고 흔쾌히 승낙 멀리뛰기와 3단뛰기 두 종목의 선수로 뛰게 되었다.
김덕현 선수는 체고 3학년때 전국대회 삼단뛰기에서 16m 15를 뛰어 고등부 신기록을 기록하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 대학을 진학하면서 국가대표로 뽑힌 김덕현 선수는 대표팀 도약코치인 박영준 한국체대교수에 의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박 교수 자신 역시 80년대 세단뛰기로 한국 최초 16m의 벽을 돌파한 박 교수는 단박에 김덕현의 잠재력을 간파하고, 과학적인 이론과 풍부한 경험을 살려 진정한 선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골반의 유연성을 강조해 도움닫기 스피드를 끌어올리고, 홉 스텝 점프로 이어지는 세단뛰기의 연결 동작을 끊어지지 않게 지도함으로써 가파른 기록향상을 이끌었다. 박 교수는 "기술 습득 속도가 빠르고, 유연성이 뛰어나 세계적인 선수로 대성할 수 있다"며 오랜만에 등장한 '대물'에게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러한 박 교수의 기대 속에 김덕현 선수는 17.07m이라는 기록을 달성 세계 25위권 수준으로 월드클래스급으로 도약하여 아시안게임 우승은 받아 놓은 밥상이라는 표현으로 극찬했다.
그 후 2005년도에 대학을 진학하면서 국가대표로 뽑힌 김덕현 선수는 국가대표로서 이탈리아 베오그라드에서 개최된 유니버시아드대회 멀리뛰기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2년 후 태국에서 열린 세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3단 뛰기로 우승을 차지 보성 벌교출신 김덕현이라는 이름을 국내와 세계육상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후로도 김덕현 선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국가대표선수로 계속 활동하면서 2010년 아시안게임에서 다리에 오는 통증을 참고 금메달을 획득하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또한 대학원에 진학하여 후진양성에 앞장설 준비도 갖추고 있으며 2010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멀리뛰기에서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결승에 진출하였으나 또 다른 3단뛰기 종목에 도전하였으나 불의의 발목부상에 의하여 결승에 오르지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부상에도 김덕현 선수는 태릉선수촌에서 재활치료에 전념하며 국가대표선수로 앞으로 다가올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 특히, 영국에서 열릴 올림픽에서 태극기를 휘날릴 꿈을 안고 열과 성을 다해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한편, 이웃 화순군 출신 이용대(李龍大)선수는 2008년 하계 올림픽 배드민턴 혼합 복식에서 이효정과 함께 금메달을 획득 국위를 선양하였다는 공로로 화순군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으며,
이용대배 국제배드민턴 선수권대회까지 개최하며 화순군을 배드민턴 성지로 각인시키며, 전국에서 전지 훈련차 수 많은 선수와 가족에 의해 지역경제까지 되살리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에 반해 보성의 김덕현 선수는 한국선수로는 육상계에서 유일하게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으나 정작 김선수의 출신지인 보성군으로 부터는 안타깝게도 지역을 알리는 홍보대사 제의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선수의 아버지 김용호씨는 “보성군의 대표로 출전하여 세계를 제패하는걸 꼭 보는게 최고의 꿈이자 희망”이라고 말하고 “덕현이에게 힘”을 몰아줄 것을 부탁했다.
장태일 기자 jnnews.co.kr@hanmail.net
김 선수는 제 87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마(魔)의 17m' 훌쩍 넘는 17.07m의 한국신기록을 세워 체전 MVP로 뽑혔다.
그 후 김덕현 선수는 중학교에 진학한 후 2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육상선수로 입문하여 정식 훈련을 받으며 100m달리기와 멀리뛰기 선수로 활약 장래가 촉망 받는 선수로 주목 받다가 광주체육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김덕현 선수는 체고 3학년때 전국대회 삼단뛰기에서 16m 15를 뛰어 고등부 신기록을 기록하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 대학을 진학하면서 국가대표로 뽑힌 김덕현 선수는 대표팀 도약코치인 박영준 한국체대교수에 의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골반의 유연성을 강조해 도움닫기 스피드를 끌어올리고, 홉 스텝 점프로 이어지는 세단뛰기의 연결 동작을 끊어지지 않게 지도함으로써 가파른 기록향상을 이끌었다. 박 교수는 "기술 습득 속도가 빠르고, 유연성이 뛰어나 세계적인 선수로 대성할 수 있다"며 오랜만에 등장한 '대물'에게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러한 박 교수의 기대 속에 김덕현 선수는 17.07m이라는 기록을 달성 세계 25위권 수준으로 월드클래스급으로 도약하여 아시안게임 우승은 받아 놓은 밥상이라는 표현으로 극찬했다.
그 후로도 김덕현 선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국가대표선수로 계속 활동하면서 2010년 아시안게임에서 다리에 오는 통증을 참고 금메달을 획득하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또한 대학원에 진학하여 후진양성에 앞장설 준비도 갖추고 있으며 2010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멀리뛰기에서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결승에 진출하였으나 또 다른 3단뛰기 종목에 도전하였으나 불의의 발목부상에 의하여 결승에 오르지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부상에도 김덕현 선수는 태릉선수촌에서 재활치료에 전념하며 국가대표선수로 앞으로 다가올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 특히, 영국에서 열릴 올림픽에서 태극기를 휘날릴 꿈을 안고 열과 성을 다해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이용대배 국제배드민턴 선수권대회까지 개최하며 화순군을 배드민턴 성지로 각인시키며, 전국에서 전지 훈련차 수 많은 선수와 가족에 의해 지역경제까지 되살리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에 반해 보성의 김덕현 선수는 한국선수로는 육상계에서 유일하게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으나 정작 김선수의 출신지인 보성군으로 부터는 안타깝게도 지역을 알리는 홍보대사 제의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선수의 아버지 김용호씨는 “보성군의 대표로 출전하여 세계를 제패하는걸 꼭 보는게 최고의 꿈이자 희망”이라고 말하고 “덕현이에게 힘”을 몰아줄 것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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