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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민족의 미래, 해원(解怨).(후편)
  • 기사등록 2018-01-25 08: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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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회장
[전남인터넷신문]오에 충성을 맹세하였던 월이 자꾸만 성장을 거듭하여 위협을 느낀 합려는 기원전 496년 월왕 윤상이 죽고 구천이 등극하자 월나라를 공격하였다.

 

전세가 미미한 월 왕 구천은 군사인 범려의 도움을 받아 합려에 대항하여 진군 앞에 일부 군사를 3열로 정열 하도록 세운 뒤 갑자기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자신들의 목을 칼로 잔인하게 찔러 자결토록 하였다.

 

오의 군사들이 기상천외의 처참한 장면에 넋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월이 주력군으로 자결한 동료의 피 값을 보상 받으려는 듯 결사항전의 자세로 오나라 군대를 급습하니 전열이 무너지고 패퇴하기 시작 하였다.

 

혼비백산한 오의 군사들이 퇴각하는 동안에 합려왕도 아버지와 똑같이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었는데 그로 인하여 상태가 악화되어 아들인 부차에게 자신의 원한을 반드시 월에게 갚아주도록 유언하고 유명을 달리 하였다.

 

이로써 오나라와 월나라의 철천지 원한의 서막이 시작 되었다.

 

오의 부차는 왕위에 오른 뒤 아버지의 치욕스런 죽음과 유언을 잊지 않으려 땔감위에서 잠을 청하고 날마다 아버지의 유언을 외치며 각오를 다지기를 2년 동안 군사를 양성하고 군량을 비축하여 날로 국력이 강성 해졌다.

 

기원전 494년 후환이 두려운 월의 구천이 먼저 선공을 하였으나 오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패퇴하여 추격을 피하다 회계 산에 포위되어 자결을 하려던 구천에게, 범려와 문종이 오나라의 재상 백비가 재물을 탐한다 하니 그에게 재물을 보내 목숨을 보전하여 재기의 방법을 강구토록 하였다.

 

오자서는 부차에게 월 왕 구천은 고통을 능히 견뎌 후환이 될 것이 분명하니 지금 즉시 목숨을 거두도록 누차에 걸쳐 간하였음에도 듣지를 않았다.

 

월 구천의 재물을 받은 백비는 오자서와 같은 초나라 사람으로 망명하여 부차의 눈을 가려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이제는 적으로 돌아서 오자서의 가슴에 또다시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심게 하였다.

 

부차는 백비의 말만을 듣고 월 구천의 항복을 받아들여 노예로 삼아 말에 오를 때는 범려의 등을 밟아 오르고 구천으로 하여금 말고삐를 잡도록 하면서 온갖 구차한 일을 시켰는데, 심지어는 구천이 목숨을 보전하기에도 두려운 나머지 범려의 간언에 따라 몸이 불편하다는 부차의 배설물을 혀로 핥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 월에 남아 백성들을 관리하던 문종이 또다시 백비에게 온갖 재물을 바치고 구천을 돌려보내줄 것을 부탁하고 범려는 인물이 빼어난 서시를 동시에 후궁으로 바치니 부차는 한순간 아버지의 유언을 잊고 구천을 본국으로 자유롭게 돌려보내기에 이르렀다.

 

참담한 모욕과 굴욕을 겪으며 고향으로 돌아 온 구천은 초가집에 땔나무를 깔고, 고기를 먹지 않고, 무명옷을 입고, 방안에는 짐승의 쓸개를 걸어두고 매일 빨아대며 복수의 의지를 다지는데 처절한 원한은 날이 갈수록 더욱 굳어만 갔다.

 

기원전 490년 제나라의 경공이 죽고 임금이 어린데다 대신들이 권력을 탐하여 나라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 부차는 제나라를 공략하려고 준비를 서둘렀다.

 

오자서가 월 왕 구천은 좋은 음식을 삼가고 민가에 초상이 나면 조문을 가고 아픈 이가 있으면 문안을 다니며 민심을 모아 장차 오나라를 공격할 힘을 기르고 있으므로, 제나라는 피부병에 불과하다면 월나라는 속병에 해당하니 지금이라도 구천을 죽여 후환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출정을 반대 하였다.

 

급기야 부차는 오자서를 제나라의 사신으로 보내기로 하고, 오자서는 초나라에서 아버지 오사가 비무기에게 당하였던 원한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자신이 천거한 백비에 의하여 모함을 받고 있으며 그나마 나라의 존망이 자꾸만 위태로운 지경으로 나아가니 심사가 뒤틀려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아들을 불러 장차 이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과 같아 오나라의 사직과 함께 자신은 명운을 같이 하겠으나 너까지 같이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하며 제나라에 데리고 가서 친분 있는 재상에게 아들을 의탁하고 오나라로 귀국 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백비는 오자서를 부차에게 여러 경로를 통하여 모함을 거듭하고 구차하게 해명할 길도 없으니 결국에는 부차 또한 보검을 내려 스스로 자결토록 명하였다.

 

오자서는 자신의 운명이 다 하였음을 직감하고 집안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죽거든 무덤가에 가래나무를 심어 오나라의 왕을 위한 관으로 삼게 하고, 나의 두 눈을 뽑아 성문 앞에 월나라를 향하여 걸어두면 오 왕조가 월나라에 의하여 패망하는 것을 반드시 지켜 볼 것이다”고 피를 토하는 절규를 끝으로 스스로 목을 찔러 처절하고 한 많았던 일생을 거두었다.

 

부차는 천하의 패권을 노리고 제나라를 치는 과정에서 진나라와 대적하여 양국 간에 전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오나라의 국력은 갈수록 탕진되어 가고 재정이 고갈되기에 이르렀다.

 

기원전 482년 월 구천은 각고의 노력으로 양성한 군대로 오나라를 기습하여 태자 우를 비롯한 아들들을 죽이고 치명타를 입히자 그제서야 당황한 부차가 돌아와 국면을 수습하려 했음에도 계속되는 월나라의 공격에 못 이겨 고소 산에 포위되어 갇히는 신세가 되어 기원전 473년 끝내는 멸망하고 말았다.

 

구천이 100호나 되는 조그마한 섬을 내어주며 부차에게 살도록 하였으나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부차는 “내가 죽어서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구나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한탄하고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목을 베어 원한에 사무친 일생을 마감 하였다.

 

부차를 제거한 월의 구천은 그동안의 모욕과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풀었을 뿐 아니라 범려와 문종의 도움을 받아 각고의 노력 끝에 천하의 패주가 되었다.

 

월의 구천과 함께 온갖 고락을 나누었던 범려는 구천이 뜻을 이루는 것을 보고 미련 없이 벼슬을 버리고 어딘가로 잠적하면서 문종에게도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 법이니 관직을 버리고 물러날 것을 권하였으나 듣지를 않았다.

 

문종이 기회를 놓치고 우유부단 하던 순간 급기야 그토록 충성을 다하였던 구천으로부터 모반을 꾀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오자서와 마찬가지로 자결을 명받아 한 많은 일생을 스스로 거두었다.

 

일국을 도모하여 목숨을 바쳐 이룩한 인간의 길흉화복이 나중에 알고 보면 모두가 하늘에 떠 있던 구름과 같아서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여 부질이 없거늘 불을 쫓는 불나방의 화신처럼 인간은 원한에 얽매어 정도를 잃고 정처 없이 방황하는 것이다.

 

역사의 현장에 나타난 철천지의 원한은 누군가의 욕망을 채우려 다른 사람의 인격과 품위를 무참하게 짓밟은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무릇 인간이나 짐승이나 정복자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누군가의 생명과 재산과 명예를 무참하게 빼앗으면서도 원한이 뼈에 사무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생에 풀지 못한 원한은 원혼을 낳고 인간의 얼이 떠나갈 길을 가로 막아 천국과 지옥도 아닌 연옥에서 해량 없는 방황을 부추기고 나머지 후손들에게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하면서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큰 장벽이 되는 것이다.

 

매사에 원한을 맺은 자가 있으면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자신이 먼저 서둘러 풀어야 할 것이며 그동안의 죄 값을 치른 뒤 용서를 구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 길만이 번민의 강을 건너는 원혼을 달래 곳곳에 넘치는 사무친 원한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완화시켜 평화로운 다음 세상으로 나아가는 터전을 일구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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