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김해로 이사를 와서 처음으로 가족나들이를 간곳이 지금의 가락로93번길 26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김수로 왕릉이다.
지금도 생각 나는것은 푸르른 잔디밭에서 가족들이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던 행복했던 기억이다.
오늘 머리도 식힐겸해서 잠시들른 김수로왕릉의 모습이다. 평일이라 한산하였다. 공사중이라 아쉬움도 많이 있었지만 띄엄띄엄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든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눈길을 끈다. 할아버지 혹시나 싶어 문고리도 당겨보고 젊은 아가씨들이 수로왕릉비 앞에서 한껏 모양을 뽐내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수학여행 시절이 되면 방방곡곡에서 수로왕릉 견학을 많이 오고 있다. 수로왕릉 무덤앞에서는 금관가야를 호령하는 듯한 힘찬 김수로왕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김수로는 김해 김씨의 시조다.
탄생과 치적에 관해서는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에 전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직 나라가 없던 시절에 가락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각 촌락별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었는데, 3월 어느 날 하늘의 명을 받아 9간(九干 : 族長) 이하 수백 명이 구지봉(龜旨峰)에 올라갔다. 그 곳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고 춤추고 노래하자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로 싼 금빛 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속에는 태양처럼 둥근 황금색 알이 6개 있었다. 12일이 지난 뒤 이 알에서 남아가 차례로 태어났는데, 그 중 제일 먼저 나왔기 때문에 이름을 수로라 하였다. 주민들은 수로를 가락국의 왕으로 모셨고, 다른 남아들은 각각 5가야의 왕이 되었다.
이때가 42년(후한 건무 18)이었다고 한다. 수로는 즉위 후 관직을 정비하고 도읍을 정해 국가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그리고 천신의 명을 받아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아유타국(阿踰陀國)의 왕녀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157년을 재위하다가 죽었는데, 아들이 그 뒤를 이어 거등왕이 되었다.
탄생과 치적에 관해서는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에 전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직 나라가 없던 시절에 가락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각 촌락별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었는데, 3월 어느 날 하늘의 명을 받아 9간(九干 : 族長) 이하 수백 명이 구지봉(龜旨峰)에 올라갔다.
그 곳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고 춤추고 노래하자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로 싼 금빛 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속에는 태양처럼 둥근 황금색 알이 6개 있었다. 12일이 지난 뒤 이 알에서 남아가 차례로 태어났는데, 그 중 제일 먼저 나왔기 때문에 이름을 수로라 하였다.
주민들은 수로를 가락국의 왕으로 모셨고, 다른 남아들은 각각 5가야의 왕이 되었다. 이때가 42년(후한 건무 18)이었다고 한다. 수로는 즉위 후 관직을 정비하고 도읍을 정해 국가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그리고 천신의 명을 받아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아유타국(阿踰陀國)의 왕녀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157년을 재위하다가 죽었는데, 아들이 그 뒤를 이어 거등왕이 되었다.
2시간 가량의 수로왕릉 여행은 여기서 끝내고 다음에는 수로왕의 부인인 수로왕비릉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