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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요리사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4-04-09 08: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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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동네 요리사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과거 농촌, 산촌, 어촌은 모두 상부상조(相扶相助)하는 지역 공동체였다. 오늘날과 같이 농업의 기계화율과 생활용품의 대량 생산율이 낮았던 손노동의 시대에는 마을이 공동체로서 역할이 컸었다.

 

모내기와 같은 일은 품앗이로 했으며, 마을의 한 가정에 애경사가 생기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합심해서 각각의 역할 분담을 했다.

 

전남지역의 꽃상여와 지화 문화를 조사한 결과 마을에 따라는 장례에 사용할 물품은 마을 공동으로 구입해 놓은 곳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에서는 각 가정에서 한 개씩 내놓고, 행사 때에는 그것을 각기 사용하기도 했다(허북구. 2019. 근대 전남의 꽃상여와 상여용 지화문화. 세오와 이재).

 

애경사에 사용되는 요리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 따라서는 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을 준비해 놓은 곳들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마을에서는 각 가정에서 여유롭게 준비해 놓은 그릇을 모아 행사에 사용했다. 상도 마찬가지여서 지금도 시골 가정의 오래된 상을 뒤집어 보면 상판 뒷면에 이름이 쓰여진 것들이 있다. 잔치 때 상을 수거해서 사용하고 돌려줄 때 혼동하지 않도록 이름을 써 놓은 것이다.

 

행사가 있을 때 요리는 마을에서 품목별로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맡았다. 생선요리를 잘하는 사람, 돼지고기볶음을 잘하는 사람, 잡채를 잘하는 사람 등이 각각의 품목을 담당했고, 이들이 마을의 전문 요리사였다.

 

행사 때 마을의 요리사들은 자신의 비법을 공개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자신의 비법을 공개함으로써 그 요리를 먹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볼 수가 있었다. 또한 행사를 통해서 자신의 비법을 공개하고 전수하는 역할을 했다.

 

마을에서 음식 잘하기로 소문만 동네 요리사가 행사를 통해 만들고 선보이면 이 레시피나 맛이 마을의 표준 맛이 되어 개인 가정의 요리가 아니라 마을의 특색 있는 음식이 되었다.

 

특히 과거에는 시골에서 행사를 치르게 되면 부모들이 행사를 하는 집에 일손을 돕기 때문에 아이들도 모두 행사를 치르는 집에서 모여 식사함으로써 동네 요리사들이 만든 음식의 맛은 아이들에게까지 맛보고 확산되었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 손노동의 많은 부분을 기계가 대체했고, 노동인력의 부족, 철저한 계산 등에 의해 품앗이가 거의 없어졌다. 행사는 결혼식장, 장례식장 등 전문적인 장소에서 전문적인 업체가 대행하고 있다. 요리 또한 전문점에서 하고, 음식을 나누는 일도 드물게 되었다.

 

도시에 가까운 마을에서는 외지에서 유입된 사람들은 많으나 교류는 적어지고, 도시와 동떨어진 마을에는 소수의 고령자분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으면서 동네 요리사가 없어졌다. 동네 요리사가 없어지면서 마을에서 생산된 채소 등 지역의 재료를 이용한 마을만의 특색있는 음식도 사라지고 있다.

 

마을의 특색있는 음식이 사라지면서 그 음식에 사용된 특색있는 재료들이나 제조과정 또한 용도를 잃으면서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많이 늦은 감이 있으나 농업 관련 기관에서는 지금이라도 이들 재료와 레시피를 조사하고 보존하여 언제든지 농촌 생활의 풍부함, 재미농업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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