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지난주 전라북도 장수에서 점심을 하던 중 생소한 나물을 만났다. 밥상에 함께 나온 묵나물을 밥에 넣어 비벼 먹었는데, 그 맛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끌렸다. 식당을 나오며 주인에게 이름을 묻자 “장녹나물”이라 했다. 장녹은 전통적으로 자리공이나 미국자리공을 통칭하는 명칭으로, 『동의보감』 같은 고전 문헌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자리공에는 사포닌과 솔라닌, 미국자리공에는 피토락토겐 같은 독성 물질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장녹나물이 나물로 쓰인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실제로 맛본 것은 처음이었다. 의외로 입에 잘 맞았고, 장수뿐 아니라 진안, 무주, 남원 등 전북 동부 산악지대와 경남 지리산 일대에서도 식용으로 즐겨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지역에서 전통 나물로 활용되어 왔지만, 독성 식물이기에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원료목록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상업적 판매가 불가능하다.
장녹나물처럼 독성이 있음에도 식용되어 온 식물은 적지 않다. 전북 부안군 위도의 위도상사화도 대표적이다. 위도 주민들은 위도상사화 꽃대를 잘라 쪼개어 바닷물에 담갔다가 건조해 나물로 이용하는데, ‘못무리대나물’이라 불리며 귀한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이 역시 식품원료목록에 없으므로 상업적 유통은 금지되어 있다. 안전을 위해 독성식물의 식용을 제한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이지만, 지역 전통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달리 독성이 있음에도 합법적으로 식용 가능한 것으로 등재된 식물도 있다는 것이다. 고사리, 원추리, 비비추 등이 그 예다. 이들은 삶거나 물에 담가 독성을 제거한 뒤 먹는 전통적 방식이 널리 활용되어 왔기에 식품원료목록에 등록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논리라면 장녹나물도 마찬가지 조건을 충족할 수 있으나, 아직 등록되지 않아 식당에서 비빔밥 재료로 사용하는 것조차 불법으로 간주된다.
이처럼 조상 대대로 즐겨온 나물이지만 제도적 규제로 인해 특산품화하지 못하는 사례는 전국 곳곳에 존재한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향토의 맛을 접하지 못하고, 농민들은 소득원으로 개발할 기회를 잃는다. 게다가 일부 식물은 해외에서 안전성이 인정되어 식용 가능한 품목으로 지정되었음에도, 국내에서는 여전히 금지 목록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지자체 차원에서 전통적으로 먹어온 독성 식물의 안전성을 재검토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철저한 검증과 관리 체계 속에서 지역의 전통 나물이 합법적으로 생산·유통된다면, 농민들에게는 새로운 소득 작목이 되고, 소비자들에게는 다양한 미각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상들의 지혜가 깃든 전통 나물들이 불법과 규제의 그늘에 가려 사라지기보다는, 시대에 맞게 안전하게 계승되고 발전하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0. 독성식물 위도상사화로 만드는 못무리대 나물과 전남의 꽃무릇.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 칼럼(2020.9.6.).
허북구. 2020. 상사화 비빔밥, 영광 특산 음식으로.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 칼럼(202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