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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 쌀 소비 촉진 지원 조례와 쌀 소비문화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5-09-30 08: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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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전라남도 쌀 소비 촉진 지원 조례안’이 제393회 전남도의회 임시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조례안은 전라남도지사가 쌀 소비 촉진을 위해 생산자단체의 직거래 판매 지원, 쌀 전문매장 설치, 공공기관의 쌀 화환 등 쌀 관련 제품 우선 구매‧사용을 규정하고 있으며, 쌀의 영양학적‧공익적 가치를 알리는 교육 및 캠페인 등 소비문화 조성 방안도 포함하고 있다.

 

쌀 산업의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고 농가 소득 증대 및 식량 자급률 향상 차원에서 이번 조례 제정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제 시행 과정에서는 실질적인 효과와 방향성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쌀 생산량은 약 370만 톤으로 2000년에 비해 33% 감소했고, 같은 기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93.6kg에서 55.2kg으로 무려 41% 줄었다.

 

쌀 소비 감소는 국민소득 증가, 1인 가구 확대, 간편식 선호 등 복합적인 사회 변화가 맞물리며 심화되고 있다. 전국 최대 쌀 생산지인 전남은 그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식습관 변화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일본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일본의 1인당 쌀 소비량은 2012년 56.2kg에서 2022년 50.9kg으로 약 10% 줄어드는 데 그쳤다. 반면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71.2kg에서 55.8kg으로 21%나 감소해 일본보다 두 배 이상 큰 폭의 하락을 보였다.

 

더구나 일본은 올해 쌀 부족 현상까지 발생해 1990년 이후 최대 물량의 쌀을 우리나라에서 수입했다. 자급률 100%를 넘어 수출까지 하던 일본에서 쌀이 모자란 이유는 유통구조의 문제나 캠페인 부재 때문이 아니었다. 외국인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초밥’과 ‘주먹밥’ 소비 증가, 그리고 초밥의 세계적 인기로 일본 쌀의 해외 수요가 확대된 것이 원인이었다. 이처럼 일본의 경우 쌀 소비 증가는 생활문화의 확산과 새로운 수요 창출에서 비롯됐다.

 

이 점에서 조례가 규정한 쌀 전문매장 설치와 공공기관 우선 구매는 전남의 친환경쌀이나 특정 가공품처럼 차별성이 있는 품목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쌀 소비 확대를 위해 이러한 방식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쌀은 필수품으로, 소비량에는 물리적 상한이 존재한다.

 

전문매장이 늘어나거나 화환대신 구매해서 소비자들에게 나눠 준다고 해서 하루 세 끼가 다섯 끼로 바뀌지 않으며, 한 끼에 한 공기를 두 공기로 늘릴 수도 없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전체 소비량은 거의 일정하다. 결국 구매 주체만 달라질 뿐이며, 자칫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흐를 위험이 있고, 시장을 왜곡시킬 우려도 있다.

 

쌀의 영양학적‧공익적 가치를 알리는 교육과 캠페인도 의미는 있으나 비용 대비 효과는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쌀 소비 감소의 구조적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에 대응하는 전략이 우선돼야 한다. 특히 1인 가구 확대와 간편식 선호에 대응한 소용량·간편조리용 쌀 가공식품 개발과 보급이 절실하다. 쌀밥 중심의 전통적 소비 패턴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양식에 맞는 제품군을 확대해야 한다.

 

더 나아가 쌀을 필수품에서 기호품으로 전환하는 전략적 접근도 필요하다. 밥은 하루 세 끼 이상 소비되지 않지만, 기호품은 상황에 따라 여러 차례 소비될 수 있다. 커피가 대표적이다. 기호품화된 쌀 제품은 떡, 음료, 간식, 디저트, 술 등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으며, 이는 소비층 확대와 시장 규모 확장으로 이어진다.

 

소비를 필수량에 제한하지 않고,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는 상품으로 변모시켜야 한다. 동시에 내수 증진과 수출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전남의 우수한 품종과 가공기술을 활용한다면 해외 한식 열풍과 연계해 쌀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따라서‘전라남도 쌀 소비 촉진 지원 조례안’은 쌀 소비 감소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고, 정책적 논의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조례 시행만으로 쌀 소비 확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근본적 원인 진단 없이 형식적 소비 장려에 매몰된다면 행정력 낭비와 기회비용만 초래할 수 있다.

 

이제는 변화된 사회구조와 쌀소비문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시대적 소비문화를 반영한 실질적 대책, 즉 1인 가구·간편식 맞춤형 제품 개발, 쌀의 기호품화, 내수 증진과 수출 전략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그것이 쌀 산업 위기 극복과 농가 소득 증대, 식량 자급률 향상이라는 목표를 실현하는 길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전남 브랜드쌀, 지역 밥상과 연계되어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07-31).

허북구. 2025. 동아시아의 쌀 문화와 떡의 세계화.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07-24).

허북구. 2025. 남도국제미식산업박람회와 돈까스.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07-24).

허북구. 2025. 아침밥 먹기 운동과 초밥 제조 로봇.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06-24).

허북구. 2020. 쌀화환, 농가에게 도움 되지 않는다. 허북구농업칼럼(202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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