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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음식, 사라져가는 차별성과 정체성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5-10-02 08: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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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여행이나 출장길에 맛보던 지역 음식이 이제는 단순한 끼니 해결을 넘어 관광의 목적이 되고 있다. 음식을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푸드 투어리즘’이 확산되면서 각 지자체는 앞다투어 음식관광을 지역 발전의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시도가 가시적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겉으로는 음식축제와 맛집 홍보가 활발해 보이지만, 정작 소비자들이 굳이 특정 지역을 찾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핵심 원인은 지역 음식의 정체성 부재다. 맛과 서비스만으로 승부를 건다면 전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유명 프랜차이즈에 밀릴 수밖에 없다. 현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그 지역에만 있는 독특한 경험과 이야기다. 프랜차이즈 매장은 수익성 높은 곳이라면 어디든 입점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굳이 먼 길을 떠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음식관광이 성공하려면 기본적인 맛과 서비스는 물론, 지역 고유의 역사와 전통, 환경에서 비롯된 차별화된 정체성을 담아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나주시립도서관에서 여러 차례 강의를 진행한 바 있다. 해당 강의는 나주시립도서관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국비 공모사업 『2025년 지혜의 학교』에 선정되어 마련된 인문학 프로그램 「나주의 인문·자연환경과 음식문화」의 일환이었다. 필자는 강연에서 전라도 음식 문화를 지리적 환경, 식재료 생산지, 열원과 조리법, 조미료 활용, 인문적 배경 등 다양한 요인으로 분석하여 전라선 음식과 호남선 음식을 구분하는 이론적 체계를 제시했다. 이 체계는 저서 『전라도 호남선 음식의 적자, 나주 밥상』(허북구, 2025, 세오와이재)으로 정리되기도 했다.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진 강의중 10월 1일 강의에서는 전라선권 한정식 밥상 20개와 호남선권 한정식 밥상 30개를 실제 사진 자료로 비교하며 반찬의 종류, 조리 방법, 음식 소재, 상차림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전라선권 한정식은 순천과 여수를 제외하면 지역 고유의 특성이 비교적 잘 드러났으나, 지역별 차이는 크지 않았다. 반면 호남선권 한정식은 전반적으로 지역성이 희미해졌으며, 다만 고창·영광·광주·나주·무안·목포 등 일부 지역에서는 홍어삼합, 생고기, 육회가 거의 필수 요리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결국 지역별 특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지역 차별성과 정체성은 옅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현상은 전라도 음식 전반의 위기를 드러낸다. 전라도 음식이 ‘왜 맛있는가’,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설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논리적·학문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전라도 음식은 맛있다’라는 이미지 역시 점차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전라도뿐 아니라 전국 각 지자체가 추진하는 음식관광 정책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그 배경에는 지역 음식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규정하지 못한 채, 외부에서 유행하는 음식이나 화려한 상차림을 무분별하게 도입한 현실이 자리한다. 지역적 특색을 살려 발전시키기보다는 단기적 흥행을 위해 이곳저곳의 요소를 섞다 보니 ‘퓨전 음식’으로 변질되고, 결국 지역만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음식이 지닌 역사성과 문화적 맥락은 흐려지고, 관광상품으로서의 경쟁력도 약화된다.

 

따라서 지자체가 음식을 관광자원으로 육성하려면 무엇보다 정체성의 재발견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단순히 맛과 조리법을 넘어서 지역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의 활용, 음식의 탄생과 발전에 영향을 끼친 인문·자연환경의 분석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입맛과 생활양식에 맞게 재해석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 음식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그 지역을 방문해야만 경험할 수 있는 고유한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음식관광은 결국 ‘맛’이 아니라 ‘이야기’와 ‘경험’에서 차별화된다. 전라도 음식이 지닌 풍부한 역사와 다양성은 이미 귀중한 자산이다. 이제는 그것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지역민과 함께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전라도 음식의 차별성과 정체성이 희미해져 가는 지금, 이를 되살려 내는 일이야말로 지자체 음식관광의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전남 지자체 음식팀의 실패와 영암군 오색 월출소반의 성공.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08-18).

허북구. 2025. 남도국제미식박람회와 남도 음식의 정체성.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07-29).

허북구. 2025. 장흥 된장 물회와 고흥 유자 세비체.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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