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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버꾸놀이로 읽는 광양숯불고기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5-10-21 08:5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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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광양(光陽)은 이름부터가 밝음의 도시다. 빛 ‘광(光)’과 볕 ‘양(陽)’이 만나 햇살이 머무는 땅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이 도시는 남도의 끝자락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맞고, 가장 오래 불을 지피는 곳이다. 들판에는 버꾸놀이의 북소리가 울리고, 저녁이면 석쇠 위에서 피어오르는 숯불의 불빛이 하늘을 물들인다. 햇살과 불, 흙과 소리, 그리고 맛이 하나로 어우러진 곳. 그곳이 바로 광양이다.

 

광양버꾸놀이는 들판의 빛을 소리로 바꾼 예술이다. 버꾸는 작은 북이지만, 그 울림은 크다. 어깨에 걸고 허리를 굽혀 치는 모습은 농부가 땅을 일구는 몸짓과 닮았다. 버꾸의 짧고 단단한 가락은 흙을 깨우고, 사람의 마음을 두드린다. 봄이면 농부들이 모여 북을 치고 장단을 맞추며 한 해의 풍년을 기원했다. 그 리듬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공동체의 박자였다. 버꾸의 장단이 들판을 흔들면 논의 물결도 따라 흔들리고, 흙은 생명을 품었다. 광양의 ‘밝음’은 바로 이 흙의 리듬에서 시작된다.

 

이 들판의 리듬은 밤이 되면 불의 리듬으로 이어진다. 버꾸놀이가 끝나면 마을 어귀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숯불 앞에 둘러앉는다. 석쇠 위에 얇게 썬 소고기가 올라가면, 붉은 불길이 고기의 가장자리를 감싼다. 광양숯불고기는 불과 직접 맞닿으며 익는다. 이 불은 맹렬하지만 요란하지 않다. 숯불은 일정한 온도로 타오르며, 고기는 그 열기를 받아 천천히 색을 입는다. 불빛이 고기를 비추고, 고기의 윤기가 다시 사람의 얼굴을 비춘다. 불 위의 장면이 마치 버꾸의 장단이 불빛으로 변한 듯하다.

 

광양불고기의 가장 큰 특징은 양념에 재운 고기를 사용해 석쇠에 굽는 것이다. 고기는 미리 간장, 마늘, 배즙, 참기름, 설탕, 깨소금 등으로 간을 해 두고 석쇠에 올려 굽는다. 양념의 짠맛과 단맛이 숯불의 향과 어우러지며, 불길에 스치듯 익을 때마다 새로운 향이 피어난다. 양념의 농도와 불의 세기, 굽는 속도가 서로 맞물려야 제맛이 난다. 버꾸놀이의 가락이 조금만 어긋나도 전체 장단이 흐트러지듯, 불고기의 불길 하나, 손놀림 하나에도 맛이 달라진다. 이 미묘한 균형이 바로 광양숯불고기의 미학이다.

 

버꾸놀이의 장단이 짧고 힘차다면, 광양숯불고기의 맛은 깊고 농밀하다. 그러나 두 리듬 모두 절제된 조화를 지닌다. 버꾸의 소리가 흙의 박동이라면, 불고기의 불꽃은 그 박동이 불로 이어진 생명의 맥박이다. 버꾸의 북채가 흙을 두드리며 리듬을 만들듯, 석쇠 위의 젓가락도 불의 리듬을 따라 움직인다. 한쪽에서는 흙이 울리고, 한쪽에서는 불이 노래한다. 서로 다른 에너지지만, 둘 다 광양이라는 도시의 ‘빛’을 상징한다.

 

광양은 제철소의 거대한 용광로가 타오르는 불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 불은 쇳물을 녹이고 철을 만든다. 들판의 버꾸놀이가 흙의 리듬을 상징한다면, 제철소의 용광로는 불의 리듬을 상징한다. 낮에는 북소리가 들판을 울리고, 밤에는 용광로의 불빛이 도시를 비춘다. 이 불의 밝음이 사람들의 삶을 데우고, 산업의 심장을 뛰게 한다. 그리고 그 불은 다시 식탁 위의 숯불로 이어진다. 광양의 불은 흙에서, 산업에서, 그리고 음식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밝음의 서사’다.

 

버꾸놀이의 흥겨움은 공동체의 기쁨이었고, 숯불고기의 향은 그 기쁨을 나누는 맛이었다. 놀이판이 끝나면 사람들은 불가에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으며 장단을 이어갔다. 북의 장단과 불의 온기가 어우러져 밤을 밝히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불빛 아래에서 나누는 한 점의 고기, 북소리의 여운을 닮은 그 맛이 바로 광양의 삶의 리듬이었다.

 

광양의 ‘빛’은 단지 햇살이나 전등의 밝음이 아니다. 그것은 흙과 불, 소리와 맛이 어우러진 인간의 온기다. 버꾸의 소리가 흙의 빛이라면, 숯불의 불꽃은 그 빛의 연속이고, 제철소의 용광로는 그 빛의 확장이다. 낮의 들판이 밤의 불빛으로 이어지고, 음악이 음식으로 이어지는 도시 — 그 순환이 바로 광양의 아름다움이다.

 

광양버꾸놀이로 광양숯불고기를 읽는다는 것은, 이 도시의 불빛을 맛보는 일이다. 버꾸의 장단은 햇살의 소리이고, 숯불의 향은 그 소리의 여운이다. 제철소의 불빛이 도시의 하늘을 물들일 때, 광양의 밥상 위에서는 또 다른 불빛이 피어난다. 그 불빛은 단순한 조리의 불이 아니라, 사람의 흥겨움과 삶의 온기를 밝히는 불이다. 그래서 광양의 이름처럼, 이곳의 리듬과 맛은 언제나 밝고, 따뜻하며, 살아 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전라도 호남선 음식의 적자, 나주 밥상. 세오와 이재.

허북구. 2025. 동편제로 읽은 구례 산나물 정식.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20).

허북구. 2025. 나주 곰탕의 풍미와 수묵화의 여운.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14).

허북구. 2025. 나주 곰탕, 영화 시네마 천국을 닮은 맛.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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