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나주의 쪽염색 공예와 홍어요리는 각각 공예와 음식 분야에서 전국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다. 언뜻 보면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두 세계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하나는 천의 빛깔을 내는 염색 예술이고, 다른 하나는 코를 찌르는 향으로 유명한 발효 음식이다. 그러나 둘 다 ‘시간’과 ‘자연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완성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발효와 숙성을 통해 비로소 가장 아름다운 색과 맛을 내는 ‘남도의 철학’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통한다.
우리나라에서 천연염색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 공예다. 삼국시대부터 염색 관련 기관이 있었고, 특히 쪽염색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했다. 조선시대에는 경공장(京工匠) 제도 아래 청염장(靑染匠)이 쪽염색을 관장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그러나 1856년 화학염료의 출현과 합성염료의 급속한 보급으로 인해 전통 염색 기술은 단절 위기를 맞았다.
이에 정부는 천연염색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기능을 요하는 쪽염색장(藍染色匠) 부문을 중심으로 2001년 8월 30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을 새로 지정했다. 당시 전남 나주의 윤병운 씨와 다시면의 정관채 씨가 기능보유자로 선정되면서, 나주의 쪽물 염색은 국가무형유산으로서 다시 생명을 얻게 되었다.
쪽은 한때 영산강 유역을 대표하는 염료식물이자, 농업과 예술이 결합된 전통 공예의 중심이었다. 들녘에서 자란 쪽을 베어 니람(泥藍)을 만들고, 이를 잿물에 섞어 발효(환원)시켜야 비로소 염색이 가능하다. 이때 염료의 pH는 9~12 정도로 알칼리 상태가 되며, 미생물의 작용을 받아야만 쪽물이 숨을 쉰다. 색이 아니라 냄새, 거품, 그리고 온도의 미세한 변화가 쪽의 상태를 알려준다. 발효가 충분히 진행된 염액에 천을 담갔다가 꺼내면 공기와 만나면서 황초록빛에서 점차 푸른빛을 띠어 하늘빛으로 변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예술에 가깝다. 발효조 속의 쪽물은 작은 생태계처럼 살아 있고, 염색장은 그 변화의 호흡을 오감으로 읽어야 한다. 너무 짧으면 염색이 되지 않고, 너무 오래면 색이 탁해진다. 그래서 쪽빛이 완성되기까지의 기다림은 곧 자연과의 대화이자, 시간과 감각의 예술이다. 나주의 장인들은 이 기다림 속에서 남도의 푸른 철학을 길어 올린다.
이렇게 염색된 나주의 쪽빛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이다. 푸른빛은 하늘의 깊이와 강의 흐름, 그리고 인간의 정성을 담는다. 눈으로는 차갑지만 마음으로는 따뜻한 색, 바로 나주의 하늘과 영산강 물결이 닮은 색이다. 옛사람들은 이 쪽빛을 ‘진정(眞情)의 색’이라 불렀다. 이는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면서도 인간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남도의 정신을 상징한다.
한편 홍어는 바다의 냄새와 인간의 인내가 만들어낸 발효의 예술이다. 나주 사람들에게 홍어는 단순한 생선이 아니라 ‘기다림의 음식’이었다. 과거 겨울철에 흑산도에서 많이 잡힌 홍어는 영산포항으로 운반되어 보리베기와 모내기 등 농번기까지 저장되는 과정에서 자연 발효가 일어났고, 그 결과 특유의 향과 질감이 형성되었다. 삭힌 홍어의 pH는 9~11 정도의 강한 알칼리성을 띠며, 이로 인해 암모니아 향이 강하게 올라오고 살은 부드러워진다. 냄새 때문에 꺼리는 사람도 많지만, 나주 사람들에게 그 향은 숙성의 언어이자 발효의 향기다.
홍어의 발효 과정은 음악의 리듬과도 같다. 처음엔 조용히 시작되지만, 시간이 흐르며 미세한 화음이 쌓인다. 완전히 삭은 홍어는 입에 넣는 순간 코끝에서 머리로 퍼지는 강렬한 자극을 남긴다. 입천장이 벗겨질 듯한 이 감각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 발효가 남긴 알칼리의 칼끝이 감각을 깨우는 순간이다.
그런데 쪽염색 천이나 홍어 모두, 발효가 끝났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쪽빛 천은 염색 후 반드시 물에 담가 천에 스며든 알칼리를 빼내야 색이 안정된다. 홍어 또한 강한 알칼리성을 중화하기 위해 pH 3~4 정도의 막걸리나 묵은김치와 함께 먹는다. 이때의 조화는 단순한 음식 궁합이 아니라, 화학적 균형이자 문화적 지혜다. 수육과 곁들여 먹는 ‘홍어삼합’은 발효의 강렬함을 부드럽게 감싸며, 강한 향과 부드러운 맛, 산미와 감칠맛이 어우러지는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나주의 쪽염색과 홍어는 이렇게 ‘발효’라는 생명의 예술로 이어져 있다. 하나는 색으로 마음을 물들이고, 다른 하나는 맛으로 감각을 흔든다. 둘 다 즉각적인 결과를 내지 않으며, 기다림과 변화를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발효 후 다시 중화의 과정을 거쳐 쓰임새를 강화한다는 점에서도 닮아있다.
쪽빛 천 한 폭과 홍어 한 점 속에는 남도의 느림과 인내, 그리고 삶의 깊이가 스며 있다. 기다림을 미학으로, 발효를 예술로 바꾼 나주의 정신은 곧 남도의 철학이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시간과 조화를 이루며 가장 진한 색과 맛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나주의 예술이며 남도의 맛이다. 쪽빛은 눈으로 보는 하늘이고, 홍어의 향은 코로 느끼는 바다다. 그 두 세계가 만나는 자리에서, 발효의 미학이라는 남도의 본질을 마주할 수 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갯펄이 키운 보성 벌교의 예술, 채동선의 음악과 꼬막요리.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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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북구. 2025. 문학과 영화의 풍경에서 만난 장흥 회진면의 열무된장물회.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