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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격동기 기록사진가 이경모와 광양 재첩요리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5-10-29 08:3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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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산과 모래를 배경으로 햇살에 반짝이는 섬진강 물결 속에서 재첩을 잡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 같다. 물속으로 스며든 햇살이 은빛 비늘처럼 반짝이고, 강가의 사람들은 그 빛 속에 녹아든다. 그 장면을 마주하면 누구라도 카메라를 꺼내 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오늘날 광양은 매화의 도시로, 제철의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오래전부터 포구와 강이 어우러진 이곳은 예술가와 사진작가를 낳기 좋은 땅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기록한 사진가가 태어났다. 바로 한국 기록사진의 선구자, 이경모(1926~2001) 선생이다. 그의 렌즈는 빛과 시간을 함께 담았다. 1948년 여순사건, 6·25전쟁 등 민족의 비극을 생생히 포착하며,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지평을 연 인물로 평가된다.

 

그가 남긴 1945년 광양경찰서 시국수습군민회의 사진은 한국 보도사진의 효시로 꼽힌다. 이후 그는 여순사건과 6·25전쟁, 제주 4.3사건 현장을 목숨 걸고 취재했다. 멍석에 말린 시신 앞에서 울음을 삼키는 아낙의 모습, 총살당한 사람들의 몸이 나뒹구는 장면, 지게에 실린 시신의 발끝이 삐져나온 장면 등 이경모의 흑백사진은 말보다 강한 침묵의 기록이었다.

 

그 참혹한 프레임 속에는 후배와 친구 가족의 죽음도 있었다. 그는 단순한 기자가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함께 견딘 예술가였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사건의 기록’을 넘어 ‘사람의 기록’이라 불린다.

 

이경모는 원래 화가의 길을 걷고자 했다. 1944년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 부문 입선을 계기로 예술의 길에 들어섰지만, 아버지의 반대와 시대의 격랑 속에서 화필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그는 한국사진작가협회 발기인,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며 사진예술의 제도적 기반을 다졌다.

 

전쟁 전후에는 광주와 광주 인근뿐만 아니라 고향 광양의 풍경과 사람들을 렌즈에 담았다. 광양과 순천의 들녘, 시장 사람들의 손, 농부의 얼굴에는 전쟁보다 깊은 ‘삶의 예술’이 배어 있었다. 그가 만약 평화로운 시절에 태어났다면, 그의 카메라는 피비린내 나는 현장 대신 섬진강의 재첩을 잡는 풍경을 담았을 것이다. 모래와 물결이 어우러진 섬진강의 재첩잡이는 예술 그 자체다.

 

재첩은 길이 2cm 남짓한 작은 조개로, 섬진강·낙동강·영산강 하구 등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의 모래가 섞인 개펄에서 잘 자란다. 광양에서는 ‘손틀어업’이라 불리는 전통 방식으로 잡는다. 바지를 걷어부치고 물속으로 들어가 ‘거랭이’라 부르는 갈퀴 모양의 도구로 강바닥을 긁는다. 썰물 때 물이 빠지면, 거랭이를 흔들어 모래와 재첩을 가른다. 작은 것은 틈새로 빠져나가고, 알맞게 자란 재첩만 남는다. 이 모습이 마치 섬진강의 리듬을 따라 춤추는 사람들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광양 사람들에게 재첩은 생활의 일부였다. 예전에는 광양읍 초남리 앞바다에서도 ‘갱조개’라 불리던 재첩이 흔했다. 어민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썰물 때 초남 앞바다로 나와 재첩을 채취했다. 퇴비를 옮기던 싸리 광주리(산테미)로 재첩을 채취한 다음 자루에 담아 옮기던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광양에서 재첩은 그만큼 흔했고, 재첩을 잡은 뒤에는 깨끗이 씻어 물에 담가두었다가 끓인다. 국물은 육수로 쓰고, 남은 재첩은 으깨듯 치대어 작은 살을 모은다. 그 조갯살은 비빔밥의 고명으로, 혹은 애호박과 무쳐 반찬으로 이용되었다. 육수가 해장국으로 이용되기도 했고, 조갯살을 된장국으로 끓여 넣어 먹기도 하는 등 요리 방법이 끝이 없을 정도로 많았다.

 

광양의 섬진강 재첩잡이는 2018년 국가중요어업유산 제7호로 지정되었고, 2023년에는 ‘섬진강 재첩잡이 손틀어업’이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주관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등재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재첩요리의 다양성도,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기록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경모 선생은 여순사건 이전 고향의 사진, 유당공원과 회갑연 상차림 등 광양의 풍경을 남겼다. 만약 전쟁과 학살이 없었다면, 그의 카메라에는 재첩을 잡는 사람들, 재첩국을 끓이는 부엌의 연기, 그리고 그 맛을 함께 나누는 마을 사람들의 웃음이 담겼을 것이다.

 

그의 흑백사진은 지금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만약 평화의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더라면, 우리 예술은 얼마나 따뜻했을까?.”아마도 그 속에서 광양의 재첩잡이와 재첩요리는 더 많은 사진으로, 더 오랫동안 기록되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이다. 그러한 물음 속에서 섬진강의 물결은 여전히 흐르고, 광양의 재첩요리는 여전히 미식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영랑의 고향에서 피어난 모란, 모란을 닮은 강진 한정식.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27).

허북구. 2025. 천경자의 색과 고흥의 석류, 유자, 그리고 녹동의 장어요리.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26).

허북구. 2019. 이경모 사진 아카이브와 함께 서둘러야 할 것들. 광양뉴스 칼럼(201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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