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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윤씨 녹우당과 고택 그리고 해남 닭요리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5-10-30 08: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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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해남은 ‘땅끝의 고을’이자 ‘산의 고을’이다. 마산면·산이면·삼산면·현산면·화산면·황산면 등 여섯 곳의 면(面) 이름에 ‘산(山)’이 들어간다.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넓은 평야가 형성되었지만, 과거 해남은 남도 육지 끝자락의 바다와 마주한 산과 구릉이 이어진 땅이었다.

 

밭이 많고 평지가 적어, 볏짚이나 보릿짚이 풍부한 평야지대와는 다른 농업 구조가 형성되었다. 평야 지역이 소와 돼지를 기르며 축산문화를 발전시켰다면, 해남은 산세와 숲으로 꿩요리가 발달했고, 닭을 길러 요리를 발전시켰다. 산이 많은 지형과 마당살림이 만들어낸, 해남 특유의 가금(家禽) 문화였다.

 

이처럼 ‘산의 지명’이 많은 해남에는 건축학적으로도 빼어난 윤씨 고택들이 있다. 해남읍에서 땅끝으로 가는 길목, 현산면에는 윤두서(尹斗緖, 1668~1715) 고택과 윤철하 고택이 있다. 윤두서 고택은 현산면 백포마을에 있다. 본래는 고산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큰아들을 분가시키기 위해 풍수지리를 고려해 지었으나, 바닷바람이 심해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고, 후에 증손 윤두서가 이곳에서 거주했다.

 

현산면 초호리에 있는 윤두서의 후손 계열인 윤철하(尹哲夏)의 고택은 해남윤씨 일가가 20세기 초까지 유지해온 주거 유산으로 1984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153호로 지정되었다. 윤철하 고택은 녹우당의 사대부적 위엄보다 생활의 정취가 깃든 공간이다. 이 두 고택의 뿌리는 해남읍 연동마을의 녹우당(綠雨堂) 이다.

 

‘녹우당’은 ‘대나무잎 위에 내리는 빗소리(竹葉靑雨)’라는 뜻으로, 시와 자연을 벗 삼았던 고산 윤선도의 정신을 상징한다. 해남읍에서 대흥사로 향하는 지방도로를 따라 2km 정도 내려가면 만나게 되며,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으로 윤선도의 4대 조부인 윤효정(1476~1543)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고산 윤선도의 종택이자 남도 양반가 주거문화의 정수이며, 현존하는 고택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국가사적 제16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변에 고산 윤선도 박물관이 있다. 녹우당 일원은 정치와 학문의 중심을 넘어 예술의 가문으로 빛난다. 윤선도는 시조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와 「고산가(孤山歌)」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노래했다.

 

증손 윤두서(尹斗緖)는 조선 회화사에 길이 남은 화가였다. 그의 자화상은 한국 초상화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현재도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에는 윤두서의 화구, 문방구, 그리고 『산중신곡집』(보물), 『어부사시사집』 등 3천여 점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녹우당의 건축은 남도 사대부가의 품격과 생활의 지혜가 공존한다. 안채·사랑채·별당·광채가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특히 부엌문을 나서면 동북쪽에 장독대와 닭장, 광이 이어져 있는 구조는 실용성과 생태적 순환을 동시에 담고 있다. 부엌의 찌꺼기는 닭의 모이가 되고, 닭이 낳은 알과 고기는 다시 밥상으로 돌아온다. 닭이 울던 마당은 생명의 순환과 절제된 풍요의 철학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그 닭장이 있던 마당의 기억은 오늘날 해남읍의 닭요리 거리로 이어진다. 녹우당 인근 연동리 일대에는 ‘토종닭 요리촌’이 있다. 대흥사와 두륜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이 거리는 1970년대 닭백숙을 팔았던 작은 음식점 그리고 1980년대 후반부터 닭 코스요리를 선보이며 전국적인 명소로 자리 잡았다.

 

전국 닭요리를 판매하는 곳은 전국 각지에 있는데 해남 ‘토종닭 코스요리’는 시골에서 키은 닭 한 마리를 부위별로 가슴살을 저며낸 육회, 고추장 양념으로 볶아낸 닭불고기, 오븐에 바삭하게 구은 닭 다리와 날개, 한약재를 넣고 푹 삶은 보양 백숙, 깔끔한 닭죽까지 이어지면서 한 상이 닭 한 마리로 완성된다. 기름에 튀긴 프라이드치킨과 달리, 삶고 끓이고 굽는 과정속에 남도의 느림과 정성이 스며 있다.

 

오늘날의 닭요리 거리는 산이 많아 꿩과 닭요리가 발달했던 옛 해남의 식문화가 현대의 미식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과거의 닭은 부엌 뒤의 자급 생명체였다면, 지금의 닭은 지역경제와 관광을 잇는 문화자원이 되었다. 전통의 맛과 현대의 미각이 공존하는 이 거리는, ‘닭이 울던 마당의 기억’을 간직한 해남의 새로운 풍경이다.

 

윤선도의 시와 윤두서의 그림, 윤철하 고택의 마당, 그리고 해남읍의 닭요리 거리. 이 모든 것은 해남이라는 공간이 품은 예술과 생활의 연속이다. 자연과 예술, 그리고 닭요리에서 인간의 손맛이 이어지고, 그것이 해남의 문화를 맛볼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래서 해남의 닭요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산(山)의 고을이 길러낸 예술의 맛과 풍경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대한민국 격동기 기록사진가 이경모와 광양 재첩요리.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29).

허북구. 2025. 오지호의 인상주의와 술향의 인상을 품은 화순 기정떡.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29).

허북구. 2025. 영랑의 고향에서 피어난 모란, 모란을 닮은 강진 한정식.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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