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나주 금성산 자락에는 심향사(尋香寺)라는 사찰이 있다. 통일신라 시대 원효가 창건한 미륵원(彌勒院)이 그 기원이었고,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이름이 바뀌어 오늘날의 ‘심향사’에 이르렀다. 이 ‘심향(尋香)’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불교적 용어가 아니다. 인도 신화와 불교에서 음악·향·노래를 관장하는 천상 악사신(音樂神)인 건달바(乾闥婆, 산스크리트어 gandharva)의 한역(漢譯) 가운데 하나가 심향(尋香)이다.
‘심향’이라는 뜻은 문자 그대로 ‘향기를 찾아다님’이며, 음악과 향을 먹고 사는 신(神)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름 속에 이미 ‘음악의 신(音樂神)’이 깃들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나주는 오래전부터 걸출한 음악인들을 낳은 고장이었다. 그 중심에는 조선 후기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인 예인조직이었던 나주 ‘신청(神廳)’이 있었다.
신청은 조선 후기에 존재했던 예능·의식 담당 전문 집단으로, 제례·굿·연희·음악·판소리 공연을 맡았던 공인(公認) 예술 조직이었다. 함경북도 경성(鏡城)에는 스승청, 제주도에는 심방청(神房廳), 경기도 수원에는 재인청(才人廳), 그리고 한양 근교의 노량진에는 풍류방(風流房)이라는 무당 관련 단체가 있었다. 또 전라도에는 나주·장흥·우수영·진도·완도·광주·전주·남원 등지에 신청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것이 존재하였다.
나주목 관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었던 나주 신청은 규모와 전승 체계가 견고해 ‘명창의 산실’로 불렸다. 판소리의 서편제를 개화시킨 정창업, 어전명창 정재근(鄭在根, 1854~1914)과 근대 5명창 김창환(金昌煥, 1848-1939) 등 임금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던 어전명창(御殿名唱)을 비롯, 무수한 명인을 배출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 정광수까지. 나주 신청은 소리의 종갓집이자 국악사의 깊은 뿌리였다.
안성현(安聖鉉, 1920~2006) 역시 이 계보를 잇는 인물이다. ‘엄마야 누나야’의 작곡자로 널리 알려진 그는 나주 남평 출신으로, 꽹과리·피리 명인이었던 할아버지 안영길(安永吉)의 손자였다. 안영길은 나주 신청 소속 공식 예능인이었으며, 그의 아들 안기옥과 안기선, 그리고 손녀 안향련은 모두 국악에 헌신한 예인 집안이었다. 나주는 소리로 가문을 잇던 지역이었고,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문화적 DNA로 남아 있다.
나주 신청이 남긴 또 하나의 문화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이다. 피리·대금·해금·북·장구·징으로 이루어진 대표적 관악 편성으로, 의식과 놀이, 판소리, 연희에 모두 쓰였다. 나주 삼현육각은 목피리 명인 박판석(朴判石)에서 시작되어 임삼봉, 임동선으로 이어졌고, 1986년 전남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보유자 임동선의 별세로 지정이 해제된 안타까운 전통이다. 나주 삼현육각의 선율은 여전히 전승되고 있다.
이처럼 나주는 ‘소리’의 고장이었고, 그 소리를 닮은 음식이 바로 나주 곰탕이다. 판소리의 목소리가 하루아침에 빚어지지 않듯, 곰탕의 국물도 시간을 먹는 음식이다. 명창이 한 소절을 위해 수십 년을 수련하듯, 곰탕은 센 불이 아니라 낮은 불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야 비로소 맑고 깊은 맛이 생긴다. 잡내를 걷어내고 끓이고 기다리는 과정은, 명창이 쉰 목을 다시 다잡으며 소리를 완성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판소리의 장단이 느림과 빠름, 여백과 고조의 조화를 통해 완성되듯 곰탕도 불의 강약 조절과 반복된 기다림 속에서 본질에 다가선다. 오랜 시간 불 위에서 떠오르는 거품을 걷어낼 때 남는 국물은 소리꾼의 쉰 목이 남긴 깊은 울림과 비슷하다.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시간과 인내가 응축된 문화적 결과물이다.
판소리 한 대목에 희로애락과 한이 스며 있듯, 곰탕 한 그릇에는 기다림의 감정과 삶의 온기가 담겨 있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 속이 풀리고 정서가 정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단순한 보양이 아니라, ‘위로의 맛’이며 ‘시간의 맛’이기 때문이다. 명창의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울리듯, 곰탕의 국물은 사람의 속을 덥힌다.
소리를 익히는 법과 국물을 익히는 법은 같다. 급하게 끓이면 탁해지고, 무리하게 내지르면 목이 상한다. 좋은 곰탕은 기다림 속에 맑아지고, 좋은 소리는 인내 속에 단단해진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라는 사실을 음식과 예술이 함께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주 곰탕은 단순한 지역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소리를 닮은 음식’이며, ‘장단을 닮은 국물’이다. 시간이 빚어낸 맛, 인내가 완성한 울림, 그것이 곰탕의 본질이며 나주 신청이 남긴 미학적 유산이다. 한 그릇의 곰탕에는 나주의 소리꾼이 살아 있고, 그 국물 속에는 삶의 장단이 들린다. 곰탕의 풍미는 결국 ‘익어가는 인간의 시간’을 먹는 일이다.
나주는 소리를 기억하는 도시이자, 시간을 끓여내는 도시다. 그래서 나주 곰탕은 음식이 아니라, 인생의 리듬을 담은 한 그릇의 문화사다. 소리꾼들이 지켜낸 국악의 장단처럼, 나주 곰탕은 오늘도 천천히 익어가며 사람들의 마음을 데운다. 그리고 나주 곰탕거리 인근에는 나주신청이 나주신청문화관이라는 이름으로 복원되어 소리의 정원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김미영. 2019. 나주 삼현육각의 전승 양상과 특징. 한국음악연구 66:5-37.
허북구. 2025. 비움의 미학, 임권택 영화와 장성 사찰 음식.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1-01).
허북구. 2025. 공옥진의 삶과 춤 그리고 영광 모시떡.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