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전국 곳곳에서 벼 베기가 한창이다. 벼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유기물로 전환하는 대표 작물이며, 그 과정에서 쌀뿐만 아니라 줄기, 잎, 볏짚, 왕겨, 등의 부산물이 함께 만들어진다. 그동안 우리는 이 부산물을 주로 사료나 퇴비로 사용하거나, 때로는 소각과 방치의 문제를 겪어 왔다.
그런데 최근 에너지 산업 측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바로 “먹을 수 없는 부분”에서 다시 회수되는 당(糖), 즉 농업부산물의 에너지 전환 가치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2025년 10월 일본 국립농업연구기구(NARO)가 발표한 연구는 이 흐름 속에서 의미 있는 전환점을 제시한다.
이 연구는 고바이오매스형 품종인 ‘호쿠리쿠 193호’를 대상으로, 지금까지 활용되지 않았던 벼 수확 잔재물, 즉 밭에 남겨져 땅속에 묻히는 ‘벼 그루터기’의 성분을 분석했다. 그 결과는 예상보다 충격적이다. 줄기와 잎으로 이루어진 볏짚에 비해 연구가 거의 없던 그루터기와 뿌리 부분에, 볏짚 당분의 60%에 해당하는 상당량의 당이 포함되어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더 나아가 전처리와 효소 당화 과정을 거치면 줄기·잎과 동일한 효율로 당을 회수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입증되었다. 연구진의 단순 계산에 따르면, 일본 전역의 묻힌 벼 수확 잔재물 속에는 200만 톤 이상의 당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바이오에탄올·항공용 SAF(지속가능항공연료)·바이오화학 원료 등으로 전환할 수 있는 거대한 자원이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농업에서 ‘버려지던 것’이 사실은 에너지 산업에서 ‘숨겨진 자원’이었던 셈이다.
이 발견은 농업의 수익과 역할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만약 벼농사가 “쌀”을 수확한 뒤 “부산물 에너지”까지 회수할 수 있다면, 농업은 더 이상 식량만 생산하는 산업이 아니라 저탄소 바이오 순환 산업의 생산자이자 공급자가 된다. 기업이 나무를 심어 탄소 배출권을 확보하듯, 농업 또한 바이오매스 기반의 탄소저감형 산업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더 큰 시사점이 있다. 한국에서도 연간 약 6,507 천톤의 볏짚이 발생하므로 100만 톤 이상의 당 자원이 땅속에 묻힌 채 버려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그루터기는 소각·퇴비화·경운 매립 등 ‘처리 비용이 드는 잔재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회수 가능한 당 자원이 된다면, 농가는 쌀 생산에 하나의 수익원을 더 얹는 구조로 전환된다. 식량 생산 + 부산물 판매 + 탄소 크레딧 + 지역 바이오산업 연계 수익이라는 다원적 경제구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인식이다. 우리는 여전히 농업을 ‘생산 vs 휴경’, ‘증산 vs 감산’이라는 이분법으로 사고한다.
그런데 바이오 기반 순환경제 관점에서 보면, 농업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부산물의 질적 회수가 농업 가치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미래 농업은 더 많이 심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것을 다시 수확하는 기술에서 출발한다. 앞으로는 농업정책도 식량 수급 중심에서 바이오 순환 산업과의 연결까지 고려한 ‘확장형 농업 모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벼는 이제 식량작물이면서 동시에 탄소 전환 소재이고, SAF 연료 원료이며, 바이오화학 산업의 기초 자원이다. 농업이 식품산업을 넘어 에너지·화학·탄소산업과 연결되기 시작하면, 농업은 다시 성장 산업이 된다. 농업이 미래 산업의 기반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관점’이다. 벼를 베어낸 뒤 밭에 남은 그루터기도 새로운 관점에서는 에너지이며, 농업을 미래 산업화하는 자원이다.
참고문헌
日本農研機構. 2025. 稲の刈り株からも糖回収!: ほ場に埋もれる糖質資源のアップサイクルへ. プレスリリース(2025.10.24.)
허북구. 2020. 벼 2회 수확시대, 전남에서 선도하자.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0.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