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담양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스치는 이미지는 대숲이고, 그 다음이 대나무를 다루는 손기술, 즉 죽공예이다. 대나무를 쪼개고, 깎고, 엮어 모양과 기능을 완성해내는 이 기술은 단순한 생활 도구 제작을 넘어 담양의 정체성을 형성해 온 문화적 DNA다.
흥미로운 점은 이 손기술의 DNA가 오늘날 담양의 음식 문화 속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되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담양의 떡갈비와 한과, 창평 엿, 대통밥 등은 모두 섬세한 손작업을 필요로 하며, 공예와 음식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례로 자리 잡고 있다.
담양의 죽공예 역사는 600년이 넘는다. 1934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담양 향교리에서 참빗을 만들었다는 것이 죽세공의 효시”라는 기록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1755~1764)에는 담양에서 만든 부채와 대바구니가 조정에 공물로 올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예규지(倪圭志) 팔성장시편에는 삿갓, 채침, 참빗, 부채 등이 거래되던 19세기 죽물시장의 모습이 보인다. 산업화 이전 담양군의 공예 비중은 매우 높았는데, 1966년에는 군 인구 12만 6천 명 중 1만 6천 명(12.6%)이 죽공예에 종사했을 정도로 산업 비중이 높았다. 그러나 기계화·대량생산·저가 수입품 증가로 공예 산업은 쇠퇴했고, 지금은 무형문화재 중심으로만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공예 DNA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를 깎고 결을 다듬으며 손끝으로 형태를 만들어내던 섬세한 감각은 지금 담양의 음식문화 속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담양 떡갈비이다.
떡갈비는 고기를 다져 모양을 내는 방식이 아니라, 칼끝으로 한 줄 한 줄 결을 긁어내고 꽃처럼 펼쳐 찰기를 만드는 작업을 거친다. 뼈에서 발라낸 고기에 칼집을 내어 육즙을 살리고, 남은 고기 부스러기는 다시 뼈에 붙여 떡 모양으로 다듬는 것은 공예와 다름없다. 손기술이 곧 맛과 직결되는 음식이기 때문에 계량화된 조리법보다 손맛이 중요하게 작용하며, 이는 공예의 감각과 매우 닮아 있다.
담양 한과 역시 공예형 음식이다. 찹쌀 반죽을 발효·증숙·건조·튀김·성형·조청 코팅·고명 입히기 과정을 거치며, 손의 힘과 온도·결 감각이 중요하다. 창평 엿, 대통밥, 전통 잣죽 등도 ‘만든다’보다 ‘빚는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공예적 과정을 닮아있다.
전통 공예품은 현대에 들어 일용품이 아닌 전시품이 되면서 일상에서 멀어졌지만, 음식은 여전히 소비·관광·체험과 연결되며 확장되고 있다. 최근 해외에서는 지역 공예품을 식기와 테이블웨어로 사용하는 ‘공예가 있는 식탁’이 확산되고 있다. 공예를 체험이 아니라 ‘사용되는 예술’로 되돌리는 리브랜딩 방식이다.
담양은 이 전략을 가장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는 지역이다. 실제로 담양 음식점에서는 대나무 젓가락, 대통밥 용기, 대나무 받침대 등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음식과 공예가 함께 경험되며, 지역성은 감각적으로 각인된다. 만약 담양 음식이 ‘대나무’와 ‘손기술’이라는 이미지를 적극 결합한다면, 담양은 ‘공예의 도시’에서 ‘공예가 있는 식탁의 도시’로 확장될 수 있다. 이것은 쇠퇴한 공예 산업의 재생과 음식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동시에 이끌 수 있다.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재능 발현은 유전 60%, 환경 40%라 한다. 담양의 손기술 DNA는 존재하지만 산업 환경이 축소된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음식은 여전히 성장 중이고, 그 속에 공예 감각이 녹아 있다면 공예 DNA는 새로운 형태로 되살아날 수 있다. 떡갈비 한 점, 한과 한 조각, 엿 한 줄기가 ‘먹는 것’을 넘어 ‘손의 예술’로 인식되는 순간, 담양 음식은 문화 자원이 된다.
특히 담양 떡갈비는 칼집의 깊이, 양념의 양, 육질을 읽어내는 감각 등 계량보다 경험에 의존한다. 이는 같은 대나무라도 결·습도에 따라 도구가 달라지는 공예 원리와 같다. 또한 담양에서 떡갈비와 한과를 맛본 뒤 담양읍 죽문화로의 ‘한국대나무박물관’을 찾으면, 식탁에서 체험한 손맛이 공예품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맛있다”에서 멈추는 여행이 아니라, “왜 맛있는가”를 이해하는 문화 여행이 되는 것이다.
담양이 공예의 전통을 음식의 현재성과 결합해 “담양 공예 밥상”이라는 브랜드를 제시한다면, 그것은 지역 공예의 재생이자 음식관광 자원의 확장이 될 것이다. 담양이 예술을 만들던 손으로 이제는 음식을 빚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손끝의 감각이 지역의 미래를 다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담양 음식문화의 가능성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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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북구. 2025. 소리와 국물이 빚어낸 남도 미학, 나주 신청과 나주 곰탕.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1.11.02.).
허북구. 2025. 공예가 있는 담양 공예 밥상과 식탁. 담양뉴스 주간시평(2025.01.06)
허북구. 2024. 담양 공예밥상. 담양뉴스 주간시평(2024.07.22.)
허북구. 2024. 담양 공예 DNA와 음식. 담양뉴스 주간시평(2024.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