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남도에서 음식은 노래와 떨어질 수 없는 문화적 짝이었다. 일하며 부르고, 모여서 먹고, 흥이 나면 장단을 더했다. 그 “밥상과 노래의 결합”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곳이 전남 진도다. 진도의 향토음식 ‘뜸부기 갈비탕’은 공동체가 한 솥을 중심으로 음식을 나누던 전통에서 생겨난 음식이며, 그 자리를 채웠던 노래가 바로 진도아리랑이다.
아리랑(국가무형유산·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은 시대를 넘어 전승되어 온 민족의 노래다. 그 가운데 진도아리랑은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라는 후렴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들노동·갯일·살림살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불려 온 생활 민요다. 사설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부르는 사람이 즉석에서 내용을 덧붙일 수 있는 선후창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 정형화된 공연 예술이 아니라, 진도 사람들의 삶과 감정이 실린 구술 예술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뜸부기는 모자반목 갈조류로, ‘뜸부기·뜸북·듬부기’ 등으로 불린다. 『자산어보』에는 바위에 붙어 자란다고 하여 ‘석기생(石寄生)’이라 기록되어 있다. 외형은 톳과 비슷하지만 더 길고 탄력이 있으며, 오래 끓여도 흐물거리지 않고 꼬들한 식감을 유지한다. 은근한 바다 향이 나며, 씹을수록 감칠맛이 배어 나온다.
진도 사람들은 예부터 ‘뜸북국’이라 불리는 국을 끓여 잔치·혼례·제사·장례 등 큰일을 치렀다. 돼지를 잡고 남은 뼈를 우려낸 육수에 뜸부기를 넣고 곰국처럼 푹 끓이면, 고기를 많이 쓰지 않아도 깊고 시원한 국물이 나왔다. 잔칫날이면 마당에 큰 솥을 걸어 온종일 뜸북국을 끓였고, 이웃과 친척이 둘러앉아 국물 한 그릇을 나누며 정을 쌓았다.
먹을 것이 넉넉지 않던 시절, 사람들은 돼지뼈를 푹 고아 맑은 국물을 먼저 떠먹은 뒤, 다시 물을 부어 몇 번이고 더 우려내며 끓여 먹었다. 그때 뜸부기는 국물에 넣어 함께 끓여 먹는 귀한 건더기였고, 여러 번 끓여도 흐물거리지 않아 반드시 필요한 재료였다. 그래서 국물의 이름도 뜸부기가 주연이 되어 ‘뜸북국’이라 불렸다. 어르신들은 지금도 “옛날에는 뜸북국이 없으면 잔치가 아니었다”라고 회상한다.
뜸북국은 바다 향이 강하지만 담백하고 깔끔한 국물이 특징이다. 해초가 육수의 느끼함을 잡아주기 때문에 고기 국물임에도 속이 편안하고, 오래 끓일수록 시원한 단맛이 우러난다. 해초를 싫어하는 이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만큼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 바다와 육지가 함께 우러난 진도의 맛이라 할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며 마당 경조사가 식당·예식장으로 옮겨 가고 큰 솥 국을 나눠 먹던 풍경도 사라졌다. 그 대신 뜸부기는 식당에서 만나는 별미가 되었고, 조리법 또한 달라졌다. 돼지뼈 대신 소갈비를 넣고 고기 양을 더해 만든 ‘뜸부기 갈비탕’이 오늘날의 표준형이 되었다. 해초가 고기의 기름기를 잡아주어 국물은 진하지만 느끼하지 않고, 뒷맛이 개운하다. 서민의 잔칫국이 지역 대표 탕요리로 재탄생한 셈이다.
뜸부기에는 알긴산(당뇨·혈압 조절), 푸코스테롤(간 보호·항산화) 등 유효 성분이 풍부해 건강식으로도 주목받는다. 진도에서는 이를 데쳐 제사상에 올리고, 입맛이 없을 때는 뜸부기국을 해장처럼 마셨다. 음식이 곧 약이 되고, 약이 다시 일상의 음식이 되는 방식은 남도 섬문화의 식생 철학으로 이어져 왔다.
이 음식과 가장 닮은 예술이 진도아리랑이다. 진도아리랑은 2022년 7월 21일 전라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생활 민요다. 노동과 삶의 순간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전승된 구술 예술이라는 점에서, 뜸부기국과 깊이 닮았다. 뜸부기국이 진도의 바다를 끓여낸 음식이라면, 진도아리랑은 그 삶과 감정을 소리로 풀어낸 노래다. 국물이 몸을 데우고, 노래가 마음을 풀어주니, 둘은 떨어질 수 없는 문화적 짝이다.
뜸부기 한 솥과 아리랑 한 자락은 진도 사람들의 삶을 연결해 온 가장 오래된 공동체적 언어였다. 바다에서 나고, 들에서 불리고, 마을에서 나누며 이어져 내려온 문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며 계속 먹히고 들리는 방식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현재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는 ‘진도 아리랑마을’이 조성돼 있으며, 국립남도국악원이 인근에 자리한다. 뜸부기 갈비탕을 맛본 뒤 아리랑 전시관·체험공간을 들르면, 국물과 노래가 이어지는 진도의 문화적 결을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맑은 날이면 수평선 너머 한라산이 보이고, 새벽이면 금성이 떠올라 풍경까지 한 편의 노래가 된다. 바다·노래·음식이 하나의 장면으로 만나는 곳, 그곳이 바로 진도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죽공예 감각이 살아 있는 담양 음식, 떡갈비와 한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1.11.09.).
허북구. 2025. 조태일의 시처럼 뜨겁게 끓는 맛, 곡성 압록 매운탕.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1.11.08.).
허북구. 2025. 소리와 국물이 빚어낸 남도 미학, 나주 신청과 나주 곰탕.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1.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