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전남 나주 영산포 출신의 소설가 오유권(1928~1999)은 1955년부터 1997년까지 43년 동안 장편 9편, 중편 10편, 단편 230여 편을 남긴 한국 농촌문학의 대표적 다산 작가다. 1966년까지 영산포에서 살았던 그는 농촌 하층민들의 고단한 삶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바라보며, 가난·억울함·생존의 갈림길이 뒤엉킨 농촌 현실을 소설 속에 꾸밈없이 담아냈다.
그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농촌의 흙냄새와 강바람, 들판의 고요를 품은 생활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오유권 문학은 한마디로 “영산강의 물줄기와 함께 흐르는 문학”이며,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늘 먹고사는 문제와 맞붙어 있다. 이점은 과거 나주의 향토음식 가운데 하나인 우렁이 요리와 닮아있다.
우렁이는 번식이 빠르고 논과 개천, 둠벙, 영산강 지천 어디서나 흔하게 채취할 수 있었던 민물 연체동물이다. 민물달팽이류인 만큼 살이 쫄깃하고 감칠맛이 뛰어나며, 칼슘·비타민 B군·철분 등 영양이 풍부해 예로부터 ‘서민의 단백질’로 불렸다. 1939년 조선일보에는 봄철 반찬으로 우렁이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고, 1970년에는 한국산 우렁이가 일본으로 시험 수출될 만큼 상품성까지 인정받았다.
영산강 유역 농가에서는 농번기에 땀을 빼고 돌아온 사람들이 애호박을 넣고, 된장을 푼 우렁된장국 한 그릇으로 피로를 풀었고, 우렁이를 데쳐 초장에 찍어 먹거나 양념간장에 무쳐 상에 올렸다. 우렁이는 값비싼 음식이 아니었지만, 노동의 현장에서 식구들의 몸을 지켜낸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자, 자연이 농민에게 허락한 작고도 넉넉한 선물이었다.
나주에서 우렁이 요리가 널리 자리 잡은 데에는 지역의 지리적 특성이 크게 작용한다. 나주는 영산강 본류와 수많은 지류가 만나는 수계의 중심지이며, 다시면·동강면·반남면 등 평야지대에는 둠벙과 논두렁이 발달해 예로부터 수생 생물이 풍부했다.
봄과 초여름이면 논바닥을 조금만 헤집어도 우렁이가 손바닥에 가득 올랐고, 농가에서는 이를 삶거나 된장국에 넣어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가까이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라는 점은 오유권 문학 속 인물들의 삶과도 어딘가 닮아있다. 그의 작품 속 농민들은 늘 하루를 버티기 위해 가장 소박한 것을 붙잡고 살아가며, 음식 역시 그런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주가 대나무의 고장이라는 점 역시 우렁이 요리 문화와 긴밀히 맞닿아 있다. 나주시 죽림동과 죽포면처럼 지명에 ‘죽(竹)’자가 들어가는 곳이 유난히 많고, 일제강점기에는 1913년 설립된 나주공예품제작소를 통해 죽세공품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대나무가 많았던 만큼 봄철이면 죽순도 풍성하게 채취되었는데 특히 솜대 죽순은 단맛이 돌아 별미로 꼽혔다.
5월은 죽순과 우렁이가 동시에 제철을 맞는 시기였기 때문에, 나주에서는 데친 우렁이와 죽순을 고추장·식초·마늘·참기름에 버무린 우렁이 초무침이 흔한 봄철 상차림이었다. 죽순의 아삭함과 우렁이의 쫄깃함이 어우러진 이 음식은 영산강 수계 음식문화와 대숲 문화가 만나 탄생한, 나주 고유의 계절적 향토음식이었다. 영산강과 대나무 숲, 물과 땅, 노동과 계절이 한 그릇 안에서 만나 만들어낸 맛이라 할 수 있다.
오유권의 소설에는 우렁된장국이나 우렁초무침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그의 문학 속에서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하다. 인물들은 늘 서늘한 배고픔과 싸우고, 밥 한 끼의 무게가 삶의 무게와 직결되어 있다. 된장국, 멀건 죽, 굽은 보리밥 같은 음식들은 인물들의 처지를 드러내는 상징이 되고, 한 끼 밥상의 온도는 그들이 견뎌내야 하는 세계의 온도와 같다.
그렇기에 영산강 지천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우렁이 요리는 오유권 문학의 정서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우렁이는 번식력이 강하고 어디서나 살아남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단백질을 내어주었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처럼 작고 질긴 생명력이 시대의 풍랑 속에서도 살아남는 존재라면, 그 상징성은 더욱 선명해진다.
우렁이 음식은 단순한 향토 요리를 넘어 농민들의 생애를 지탱해준 생활문화였다. 나주의 우렁된장국과 우렁초무침은 영산강이 만든 생태적 풍요, 대숲이 만든 식재료의 다양성, 그리고 농민의 노동이 만들어낸 진솔한 맛을 담고 있다. 그 음식의 바탕에는 “가난했지만 서로 기대며 살았던 시간들”, “자연이 내주는 것들로 꾸린 소박한 삶”이 깊이 배어 있다.
오유권이 기록한 농촌의 시간 역시 이러한 삶의 어둠과 빛을 포착한 문학적 기록이며, 이 두 세계는 서로에게 배경이 되고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현재는 나주에서 우렁이 요리를 판매하는 곳이 거의 없어졌으나 영산강 유역을 지켜온 사람들의 모습이 오유권의 문학속에 남아 있듯이 우렁이 요리에도 영산강 유역의 식문화가 담겨져 있고, 맛볼 수 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죽공예 감각이 살아 있는 담양 음식, 떡갈비와 한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1.11.09.).
허북구. 2025. 조태일의 시처럼 뜨겁게 끓는 맛, 곡성 압록 매운탕.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1.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