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줄다리기 문화, 전남 농업의 미래를 여는 줄이 되길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5-11-18 09:05:13
기사수정

[전남인터넷신문]전남도농업박물관이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된 줄다리기 문화를 기리고 그 전통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오는 21~22일 ‘세계유산 줄다리기 대회’와 학술포럼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줄다리기는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역사 속에서 탄생한 가장 원형적이고 공동체적인 의례였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줄다리기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풍요와 안전, 그리고 공동체의 화합을 기원하는 중요한 문화적 장치였다. 2015년 한국·베트남·캄보디아·필리핀의 줄다리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된 것은 이러한 가치가 특정 지역을 넘어 아시아 농경문화의 공통된 정신인 공동체, 순환, 자연에 대한 경외를 담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세계의 다양한 줄다리기 사례에서도 이 전통이 농업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네팔과 인도에서는 줄을 당겨 비와 풍작을 기원했고, 캄보디아에서는 강물의 흐름과 결합된 풍요 의례로 발전했다. 농업 중심의 공동체는 자연의 순환을 함께 체감하며 하나의 줄을 잡아당겼고, 그 행위 자체가 ‘마을의 운명을 함께 짊어지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유럽에서는 스포츠적 성격이 강해졌지만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동체적 상징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일본에서도 줄다리기는 오랜 기간 농경 의례와 결합해 발전해 왔으며, 특히 오키나와의 대줄다리기는 규모와 의례성이 독보적이다. 길이 약 200m, 무게 약 40톤에 이르는 거대한 줄을 주민들이 함께 볏짚으로 꼬아 만들고, 줄다리가 끝난 뒤에는 줄 조각을 부적으로 가져가는 전통도 있다. 줄이 ‘연결·보호·안녕’을 상징하는 문화적 장치임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줄다리기 문화는 전남에서도 충분히 재해석할 수 있다. 전남은 농업 기반이 탄탄하고, 강·평야·해안이 어우러진 자연조건 속에서 오랜 농경 공동체 문화를 형성해온 지역이다. 줄다리기의 핵심인 ‘줄(綱)’은 단순한 밧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연(緣)의 상징이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줄을 함께 잡아당기는 행위가 공동체의 운명을 함께 잇는 의례였다면, 오늘의 전남에서는 이 줄을 정보·유통·관계의 네트워크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전남 농산물인 쌀, 배, 유자, 고구마, 매생이, 꼬막 등은 단순한 생산품이 아니라 전남의 지리·기후·역사를 담아낸 ‘스토리 자원’이다. 이 각각의 농산물이 지닌 서사를 생산·유통·소비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줄처럼 연결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디지털 시대의 농업은 정보가 곧 생산력이고, 연결이 곧 경쟁력이다. 줄다리기가 상징하는 공동체적 연결의 원리를 온라인 유통망, 디지털 플랫폼, 지역 간 협력 네트워크에 적용한다면 전남 농산물의 브랜드 가치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가령, 줄다리기의 디지털 전환은 ‘줄미디어(Story-Line)’ 캠페인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남 농산물 하나하나에 짧은 ‘스토리 줄’을 부여해 SNS에서 공유하는 방식으로, 쌀·유자·배·고구마·꼬막·매생이가 가진 지역의 이야기를 한 줄 스토리로 만들어 디지털로 확산시키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전남줄이야기(StateLine)”라는 태그를 활용하면 소비자·관광객·청년층이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스토리 챌린지’가 가능하다. 복잡한 축제나 박람회 없이도 전남 농산물의 정체성, 매력, 지역성은 자연스럽게 대중 속에서 퍼져나간다. 줄이 사람과 지역을 연결했듯, 하나의 짧은 디지털 스토리가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현대적 줄이 된다.

 

따라서 전남 농업의 미래는 많은 비용을 들인 축제나 박람회가 아니라,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줄다리기가 보여준 공동체의 힘, 관계의 힘, 연결의 힘을 디지털 환경에서 새롭게 해석한다면 전남 농업은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SNS에서 전남 농산물이 자신만의 짧은 스토리 줄을 갖고 확산된다면, 줄을 당기듯 생산자·소비자·도시·농촌이 같은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줄다리기의 공동체 정신을 전남이 앞장서서 정보와 이야기의 줄로 전환시키고 활용하여 전남 농업을 견고하게 묶어준다면 전남의 미래는 더 단단하고 세련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전남 농업, 첨단기술과 인문학이 함께 가야 산다.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5-11-14).

허북구. 2024. 농업의 재미 소실과 농촌 위기.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4-01-04).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jnnews.co.kr/news/view.php?idx=416727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확대이미지 영역
  •  기사 이미지 보성군, 수험생들에게 따뜻한 수능 응원 펼쳐
  •  기사 이미지 보성군 벌교읍 ‘청정전남 으뜸마을’로 붉은 새잎과 황금 들녘 어우러져
  •  기사 이미지 [포토] ‘제3기 만국초청 계시록특강 종강식’
전남오픈마켓 메인 왼쪽 2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