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전남의 시골 마을을 찾아가다 보면,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드는 작은 식당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 음식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체인점 음식과는 달리, 그곳에 가야만 맛볼 수 있는 한정성 때문에 여행의 가장 확실한 ‘지역성’을 제공한다. 특히 제철 재료로 빚어낸 음식은 단순한 한 끼를 넘어 그 지역을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문화적 경험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 음식은 여러 요인으로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대중적 입맛과는 다른 개성 있는 향미,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재료의 생산성 한계, 홍보 부족, 시설·인력의 제약 등이 맞물리면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지역 음식이 소멸하면 조리법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토종 식재료와 그에 얽힌 지역의 기억·문화·노동이 함께 사라진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최근 보성군 복내면에서 맛본 오색 다슬기 비빔밥은 지역 음식이 생존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한 사례였다. 이 식당은 지난해 문을 연 것으로 보였고, 첫 방문 당시 입구에는 개업 축하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보성의 산골 면소재지임에도 손님이 제법 많았으나, 고객층은 주로 고령자였고 젊은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비빔밥은 다슬기를 넉넉하게 넣어 풍성했고, 당근을 비롯한 여러 채소가 색감을 이루어져 있어 오색 비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슬기는 지역 어르신들이 채취해 껍질을 제거한 것이었고, 채소들 또한 상당수가 지역산이었다. 게다가 식당 건물에는 유리를 사이에 두고 보성에서 생산된 천연염색 제품의 전시판매장이 있어 시각적으로도 보성의 정체성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만큼 그곳의 오색 다슬기 비빔밥은 지역적 특색이 뚜렷한 음식이었으며, 동시에 지역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순환경제의 흐름도 형성되고 있었다. 다만 첫 방문 때 아쉬움도 있었다. 채소가 굵게 썰려 있어 치아가 약한 어르신들이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지역 음식의 정체성이 강해도 식감이 불편하면 고정적인 손님 확보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그러나 올여름 다시 방문했을 때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식당은 여전히 손님들로 붐볐고, 비빔밥의 조리 방식도 세심하게 개선돼 있었다. 채소는 잘고 고르게 썰어져 부드러운 식감을 제공했고, 다슬기의 양과 배합도 더 조화로워졌다. 색감 역시 고급스럽고 화사해졌고, 맛도 한층 세련되었다. 그 결과, 인근 파크골프장을 찾는 이들까지 이 다슬기 비빔밥을 찾으며 새로운 고객층이 형성되고 있었다. 지역 식재료라는 강점에 고객 맞춤형 조리 개선이 더해진 덕분이었다.
이 사례는 지역 음식의 생존 조건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지역 재료와 전통 조리법이라는 ‘지역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역 고유의 맛을 지키되, 시대의 입맛과 소비자 특성에 맞게 조리법을 조정하는 ‘작은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고령층 비중이 높은 농촌에서는 식감·영양·편의성과 같은 요소가 더욱 중요해진다.
전남 곳곳에는 토종 식재료와 전통 조리법을 지켜 온 식당들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러한 음식들이 앞으로도 지역의 자산으로 역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 지역 생산자와 식당을 연결하는 안정적 순환경제 구조를 구축해 식재료 공급을 지속 가능하게 해야 한다.
둘째, 고객층의 특성을 고려한 조리 방식 개선이 필요하며, 특히 고령화된 농촌에서는 부드러운 식감과 균형 잡힌 영양 설계가 중요하다. 셋째, 지역 음식의 스토리와 가치를 전달하는 홍보 전략을 마련해 음식이 ‘지역 문화’로 인식되도록 해야 한다.
보성 복내면에서 만난 한 그릇의 오색 다슬기 비빔밥은 지역 음식의 생존 전략이 무엇인지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지역성의 고집과 변화의 수용,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지역 음식은 살아남고 발전한다. 그 균형이야말로 전남 농촌 음식문화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지역 농산물과 식문화 보고, 반찬가게.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4-02-13).
허북구. 2024. 국제남도음식문화큰잔치의 음영.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4-09-27).
허북구. 2023. 봄나물 음식문화의 위기.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