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현대사회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공허함과 정서적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 과부하, 경쟁적 환경, 고립된 생활 방식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삶의 의미를 희미하게 만든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다시 주목받는 사상가가 바로 로고테라피(Logotherapy)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 1905-1997)이다.
프랭클은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정신과·신경학 전문의로, 인간의 의미 추구를 핵심으로 하는 로고테라피를 확립한 20세기 주요 심리치료학자였다. 프랭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테레지엔슈타트와 아우슈비츠 등 네 개의 강제수용소에 수감되며 극한의 비인간적 상황을 직접 겪었다. 그의 부모와 아내 등 가족 대부분이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되었고, 그는 죽음이 일상처럼 스며든 환경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절망을 견디는지 깊이 관찰했다.
그가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찾아낸 결론은 단 하나였다. “삶을 지탱하는 힘은 의미를 향한 의지(Will to Meaning)”라는 것이다. 고통이 아무리 깊어도 ‘왜 살아야 하는지’를 발견한 사람은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프랭클은 이를 ‘인간의 마지막 자유’라 불렀다.
치유농업은 바로 이 ‘의미를 향한 회복’을 실천하는 영역이다. 사람들은 농장에서 흙을 만지고 씨를 뿌리며 작은 생명을 돌보는 과정에서 삶의 목적을 되찾는다. 이는 단순히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표면적 변화를 넘어,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내가 무엇인가를 키워내고 있다”라는 근본적 의미감으로 이어진다. 로고테라피에서 말하는 의미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일상 속 실천과 관계에서 발견되는 조용한 가치이다.
프랭클은 의미를 발견하는 세 가지 길을 제시했다. 첫째는 창조와 노동의 의미이다. 농업 활동은 바로 이러한 창조의 체험이다. 씨앗을 심고 수확하기까지의 시간은 ‘기다림의 철학’을 내면화하게 하고, 자신이 키운 결과물을 통해 자아 효능감을 회복하게 한다. 이는 우울과 무기력 속에 빠진 사람들에게 특히 큰 힘이 된다.
둘째는 사랑과 관계에서 찾는 의미이다. 치유농업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회복된다. 식물을 돌보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돌봄(care)’이라는 정서적 연결을 경험하며, 노인·장애인·청소년 등 취약계층에게 농장은 소속감과 안정감을 되찾는 공간이 된다. 프랭클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의 가능성을 본다”라고 했다. 치유농업의 돌봄 관계는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회복시키는 힘이다.
셋째는 피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되는 의미이다. 프랭클은 사람이 바꿀 수 없는 고통을 만났을 때, 그 고통을 대하는 태도가 삶의 의미를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농업 활동은 자연의 변수와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날씨 변화, 병충해, 실패는 피할 수 없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 치유농업이 정서 회복에 탁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태도의 훈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는 인간을 ‘정신·육체·영성’이 통합된 존재로 보았다. 치유농업 역시 심리적 안정, 신체 활동, 자연과의 연결이라는 삼중적 효과를 제공한다. 현대의 치유농업은 공예·음식·숲치유·정원문화·천연염색 등 다양한 활동을 결합하면서 ‘의미 기반 치유’의 폭을 확장하고, 단순한 농촌 체험을 넘어 삶의 방향을 재정비하는 복합적 회복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프랭클은 그런 사람들에게 “삶은 당신이 무엇을 기대하는지가 아니라, 삶이 당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에 달려 있다”라고 답했다. 치유농업은 바로 이 질문을 다시 묻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농업 활동을 통해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키우고 있는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의미를 더하고 있는가?”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는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오늘의 치유농업은 그 철학을 현대적으로 실현하는 장(場)이다. 농장은 단순한 체험 공간을 넘어, 삶의 방향을 잃은 이들에게 다시 빛을 밝히는 의미의 장소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다시 깨닫는다. “삶의 의미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손끝에서 싹트는 작은 생명 속에서 시작된다”라는 사실을.
참고문헌
최연우. 2025. 메리 에인스워스의 애착 이론과 치유농업의 기제.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1.21.).
최연우. 2025.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이론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1.17.).
최연우. 2025. 로저 울리히 스트레스 회복이론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