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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농수산물, 이제는 김장 플랫폼이 필요하다.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5-11-24 08: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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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연말이 다가오면서 전국 곳곳에서 김치담그기 행사가 열리고 있다. 지역 직능단체, 사회복지기관, 학부모회 등 다양한 단체가 나서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게 전달할 김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따뜻한 나눔의 행사가 실제 김치를 ‘담그는’ 일과는 다소 괴리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볼 일이다.

 

대부분의 김치담그기 행사는 학교 체육관, 도시 광장, 복지관 등 원래 김치를 담그는 시설이 아닌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그 결과 절임배추와 버무려진 양념을 이미 만들어 온 뒤 행사장에서 배추 사이에 양념을 채우고 기념사진을 찍는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겉보기에는 ‘김장 행사’지만 실제로는 김장을 체험하는 듯한 모습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배경은 명확하다. 김치를 제대로 담글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단체 행사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해당하는 문제다. 아파트 생활 비율이 높아지며 김치를 대량으로 담글 공간이 마땅치 않고, 과거처럼 부모님이나 시골 친척 집에서 김치를 나눠 오던 전통도 고령화와 농촌 인구 감소로 약해지고 있다. 그 결과 김장은 여전히 중요한 문화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공간과 시스템은 오히려 빈약해지고 있다.

 

이와 대비되는 사례가 일본 농촌 지역에서 이미 자리 잡은 ‘반찬 제조 지원 시설’이다. 김치 등 재료가 생산되는 마을에는 도시민이 찾아와 직접 김치를 담글 수 있는 전용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지역민은 채소와 양념을 판매하고, 김장 과정에도 도움을 준다. 장보기부터 씻기·절이기·양념 버무리기까지 전 과정을 체험하는 동안 도시민과 지역민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교류가 생기고, 이 인연은 다시 방문과 구매로 이어진다. 도시와 농촌이 서로 필요를 채우며 관계를 확대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한국은 김치의 본고장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단위의 김치담그기 시설이 체계적으로 마련된 곳을 찾기 쉽지 않다. 특히 전라남도는 배추와 무 등 주요 채소뿐 아니라 젓갈의 상당량을 생산하는 김치 원재료의 보고(寶庫)라 할 만하다. 각 시군이 농촌마을 가꾸기 사업을 통해 다양한 공동시설을 마련해 왔지만, 정작 ‘김치를 담글 수 있는 시설’은 부재한 경우가 많다. 전남의 풍부한 농수산물 자원에 비해 이를 활용할 생활·관광·문화 기반은 아직 미흡한 셈이다.

 

만약 전남 곳곳에 김치담그기 시설이 마련된다면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우선 지역민들이 김치를 담그는 장소와 재료를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편의성이 증가된다. 도시민이 믿을 수 있는 지역 농수산물을 직접 구매하고 김치를 담그기 위해 농촌을 방문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생활형 방문, 즉 ‘생활인구’ 증가로 이어진다. 농촌의 인구 소멸 문제를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방문이 어려운 도시민은 재료 주문과 예약 김장 서비스 등을 통해 지역 농가와 안정적으로 연결된다. 이는 생산자가 시장 수요를 예측하고 계획적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수요 기반의 생산 체계는 농가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경영 안정성을 높이며, 지역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 요소다.

 

전남은 이미 김치 재료의 최고 산지라는 비교 우위를 갖고 있다. 여기에 김치담그기 시설이라는 ‘경험 기반 플랫폼’을 더하면 단순한 농산물 판매를 넘어 지역 농업의 가치가 훨씬 확장될 수 있다.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계절, 관계망을 잇는 문화다. 이 문화를 지속가능한 지역 자원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생산·체험·유통을 하나로 연결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연말의 김치 나눔 행사를 넘어, 전남의 농수산물을 기반으로 한 상시적 김장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도시와 농촌은 서로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김치 체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 자원의 활용도를 높이고 농촌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전략적 투자이기도 하다. 전남이 보유한 풍부한 농수산물과 문화적 자산을 결합해 ‘김치담그기 시설’이라는 새로운 농촌 기반을 마련한다면, 김치 문화는 전남을 중심으로 더욱 깊고 넓게 확장될 것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지역 농산물과 식문화 보고, 반찬가게.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4-02-13).

허북구. 2025. 전남의 산지 김치와 반찬.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4-11-28).

허북구. 2024. 국제남도음식문화큰잔치의 음영.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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