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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농업기술원의 호지차 드립백, 기술인가 홍보인가?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5-11-26 08: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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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전남농업기술원이 “녹차 가공 과정에서 폐기되던 잎과 가지를 재가공해 호지차 드립백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찻잎과 어린 가지를 고온에서 단계적으로 볶아 쓴맛과 떫은맛을 줄였으며, 커피 위주의 드립백 포장기술을 차 제품에 적용한 것이 특징이라는 설명도 덧붙었다. 하지만 이러한 발표를 연구 성과로 곧바로 받아들이기에는 여러 의문이 있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이 기술이 얼마나 새로운지, 또 시장적 의미가 무엇인지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폐기 잎·가지 재활용’이라는 표현이 주는 소비자 이미지다. 찻잎 가공 과정에서는 줄기와 어린 가지가 자연스럽게 분리되며, 상업적 제다 과정에서도 이를 선별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소비자에게 이 부산물을 다시 모아 만든 차라고 설명하게 되면 다른 호지차에까지 영향을 미쳐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버리던 원료를 재가공한 차’라는 인상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 호지차 산업은 오랫동안 어린 가지(보우차, 카타기 등)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 왔지만, 이를 ‘폐기물 활용’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구수한 향을 내는 전통 제다 방식으로 소개해 품질 이미지를 철저히 관리한다. 전남농업기술원이 ‘폐기 잎 재활용’을 성과처럼 내세운 것은 기술적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소비자 인식 측면에서는 불리한 접근일 수 있다.

 

둘째, 제조 방식 자체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호지차(焙じ茶, Hojicha)는 1920년대 일본 교토에서 남은 잎·줄기·가지를 숯불에 볶아 만든 것이 기원이다. 이후 기계수확 확대로 찻잎·부산물을 버리지 않고 활용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리 잡았고, 오늘날에는 호지차 전용으로 차나무를 관리하는 농가도 늘고 있다.

 

고온·중온·저온을 조합한 단계적 로스팅 프로파일도 일본 차 산업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돼 온 일반적인 공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전남농업기술원이 개발했다는 ‘단계적 고온 로스팅 기술’은 기존 제다 기술의 응용·변형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연구기관이 기술을 개선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미 확립된 공정을 지나치게 “새로운 기술”로 포장하는 것은 과장된 인상을 줄 수 있다.

 

셋째, 드립백 포장기술을 차에 적용한 것이 ‘특징’이라는 설명도 차별성이 없다. 일본의 이뽀도(Ippodo), 산조부쓰산(山城物産), 여러 중소 차 브랜드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호지차를 드립백 형태로 출시해 왔다. 컵 위에 걸어 뜨거운 물만 부으면 우려지는 컵걸이형 드립백은 OEM 설비가 보편화되어 있어 차나 허브 제품에 적용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전남농업기술원의 발표는 ‘차 산업의 새로운 시도’라기보다, 오히려 지역 차 산업이 글로벌 트렌드를 뒤늦게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이미만 강하게 만든다.

 

넷째, 제품의 실질적 경쟁력을 설명하는 차별성이 부족하다. 단순히 어린 가지를 볶아 드립백에 담았다는 것만으로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 다양한 호지차 제품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특별함을 만들기 어렵다. 전남이 가진 지역 고유의 향미, 어린 가지 활용의 감각적 차별성, 카페인 감소라는 기능적 요소, 혹은 지역 스토리텔링이 결합되어야만 소비자에게 선택 동기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보도는 ‘기술 개발’이라는 형식적 성과에 치중해 소비자 관점의 차별성이나 시장 전략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지역 차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기술로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전남은 국내 최대 녹차 산지지만, 고품질 발효차와 프리미엄 시장에서 일본·대만처럼 강한 브랜드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차 문화 기반도 상대적으로 얕다. 이런 상황에서 관 주도의 단편적 기술 개발은 ‘홍보용 성과 만들기’에 그칠 위험이 있다. 핵심은 기술로 제품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 농가·제다업체·유통망이 연결되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따라서 전남농업기술원의 호지차 드립백 개발은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라기보다는 기존 공정을 지역 여건에 맞게 재구성한 수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문제는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그 기술을 포장하는 방식이 소비자 인식과 산업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남 지역 차 산업이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려면 무엇보다 차 문화, 브랜드 가치, 품질 차별화 전략이 선행돼야 한다. 기술은 그 기반을 받치는 도구일 뿐이다. 전남의 찻잎이 가진 풍미와 전통을 현대 소비자 경험으로 끌어올리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할 때, 비로소 이번 기술 개발의 의미도 더 단단해질 것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말차 수요의 증가.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5-04-02).

허북구. 2024. 말차의 활용법.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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