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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농업과 어니스트 베커의 ‘죽음의 부정’ 이론 - 전주기전대학 치유농업과 최연우 교수
  • 기사등록 2025-12-21 10: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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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치유농업은 자연을 매개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활동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이론적 깊이로 들어가면, 치유농업은 인간이 가장 근원적으로 회피해 온 문제, 곧 죽음에 대한 인식과 불안을 다루는 실천에 가깝다. 이 문제를 집요하게 사유한 사상가가 바로 미국의 사회이론가 어니스트 베커(Ernest Becker)다.

 

어니스트 베커는 1924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났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군으로 참전했다. 전쟁 경험은 인간 존재의 폭력성과 유한성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을 결정적으로 형성했다. 전쟁 이후 그는 시러큐스대학교에서 공부하며 인간 행동과 문화의 근원을 탐구했는데, 특정 학문 분야에 안주하지 않고 문화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정신분석을 넘나드는 학제 간 사회이론가로 활동했다. 베커는 1974년, 암으로 49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베커의 사상을 집약한 저서는 『죽음의 부정(The Denial of Death)』이다. 이 책은 1973년에 출간되었고, 베커가 사망한 이듬해인 1974년 퓰리처상 일반 논픽션 부문을 수상하며 뒤늦게 학문적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인간을 “자신이 언젠가 죽을 것을 아는 유일한 존재”로 규정했다. 이 인식은 인간을 문명으로 이끌었지만, 동시에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불안을 낳았다.

 

베커에 따르면 인간은 이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종교·이념·국가·직업·업적 같은 상징 체계를 통해 자신이 단순히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 그는 이러한 방식을 ‘죽음의 부정(death denial)’이라 불렀다. 문화와 문명은 이 부정을 집단적으로 관리하는 장치이며, 인간 행동의 상당 부분은 죽음의 공포를 억제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베커의 핵심 주장이다.

 

문제는 이 부정이 과도해질 때 발생한다. 베커의 시각에서 현대 사회는 죽음을 부정하기 위한 상징 체계가 지나치게 비대해진 환경이다. 끊임없는 성장과 경쟁, 성과와 자기계발은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는 강박을 낳는다. 멈춤과 쇠퇴, 늙음과 소멸은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실패나 패배로 인식된다. 베커는 이런 사회를 죽음의 공포를 감추기 위해 스스로를 소진하는 구조로 보았다.

 

치유농업은 이와 다른 방향에서 작동한다. 농업은 탄생과 성장, 수확과 소멸이 반복되는 순환의 활동이다. 씨를 뿌리고, 기다리고, 거두며, 남은 것은 다시 흙으로 돌려보낸다. 이 과정에는 영속성을 과시할 상징도, 즉각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논리도 없다. 치유농업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성취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순환을 통과했는가다. 이는 베커가 비판한 죽음의 부정을 강화하기보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특히 치유농업의 강점은 죽음이나 상실을 직접 언어화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베커는 인간이 죽음을 지나치게 직접적으로 설명하려 들수록 오히려 방어 기제가 강화된다고 보았다. 치유농업은 설명이나 설교 대신, 환경과 시간의 흐름으로 인간을 설득한다. 시드는 작물, 비어 있는 겨울 밭, 반복되는 계절은 삶의 유한성을 과장하지도, 회피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게 드러낼 뿐이다.

 

이러한 경험은 참여자에게 중요한 변화를 만든다.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이 줄어들고, 멈춤과 비워짐을 실패가 아닌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단순한 휴식 효과를 넘어, 베커가 말한 죽음 불안 관리 방식의 전환이다. 상징적 업적으로 불안을 덮는 대신, 유한성을 감각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삶의 태도가 이동한다.

 

어니스트 베커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치유농업은 그 질문에 대해, 자연의 순환 속에서 부정하지도 도망치지도 않는 삶의 태도를 몸으로 익히게 하는 실천적 장이다. 이 점에서 치유농업은 단순한 농촌 체험이나 웰니스 프로그램을 넘어, 현대인이 잃어버린 존재 감각을 회복하는 인문학적 실천에 가깝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5. 치유농업의 구조적 회복: 디시와 라이언의 자기결정이론.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2.21.).

최연우. 2025. 레이첼과 스티븐 카플란의 주의 회복이론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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