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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기억하는 소울푸드, 콩나물김치국과 콩나물김치죽 - 곽경자 이학박사(곽경자 식초담다 대표, 전남도립대학 식품생명과학과 겸…
  • 기사등록 2026-01-13 08: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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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밤새 휘몰아친 바람이 현관 앞까지 눈을 밀어 넣는다. 자연은 이미 깊은 겨울의 장막을 드리웠고, 많은 생명체는 동면에 들어간 지 오래다. 마당 장독대의 흑초 항아리 사이로 매서운 북풍이 울부짖으며 지나가고, 적막한 풍경은 우리 몸 또한 에너지의 사용을 최소화하라고 요구한다. 그런 겨울 아침, 토방 위에 가지런히 놓인 말표 흰고무신 한 켤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한다.

 

막내였던 나는 토방을 쓸고 아버지의 고무신을 정갈히 올려두었고, 어머니는 콩나물김치죽 한 그릇으로 매서운 추위를 순식간에 털어내 주셨다. 그 따뜻한 김과 신맛이 뒤섞인 향은 지금도 몸이 먼저 기억한다.

 

이즈음이면 김장김치가 가장 맛있게 익는다. 아삭한 식감 속에 젓갈과 마늘, 고춧가루가 오랜 시간 숙성되며 만들어 낸 젖산균의 풍미가 절정에 이른다. 어머니는 한겨울 내내 ‘재콩나물’을 기르셨다. 마당 한켠에 쌓아둔 볏짚을 태운 뒤 그 재를 시루에 담고, 하루 정도 불린 콩을 그 위에 고루 뿌렸다.

 

손등으로 물을 흩뿌려가며 적셔주면 까만 재 위에서 콩은 유난히 노란색으로 빛났다. 싹이 올라 빼곡히 들어찬 콩나물은 오선지 위의 음표처럼 생명력을 노래했다. 콩나물김치국과 콩나물김치죽은 그렇게 우리 겨울 밥상을 점령했으며, 지금은 세대를 관통해 이어지는 추억의 음식이자 심신을 달래는 힐링푸드다.

 

재를 이용해 기른 콩나물은 단순한 향토 음식을 넘어 과학적 장점을 지닌 기능성 식품이다. 물로만 키운 콩나물에 비해 맛과 향이 진할 뿐 아니라 일반영양성분, 식이섬유, 페놀화합물, 비타민, 무기질의 함량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재가 지닌 보수성과 통기성, 적절한 배수성, pH 조절 기능, 영양분 분해 및 보양 효과, 유해가스 흡착, 병충해 방지 기능 등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그 결과, 재배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콩나물은 방어 물질을 더 많이 만들어 항산화 성분이 증가하고, 아울러 비타민 C와 아미노산 등이 풍부해진다. 숙성 김치의 유산균과 만나면 장내 미생물 균형 개선, 면역력 증진, 숙취 해소, 피로 회복 등 다양한 건강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해마다 나는 콩나물김치죽을 끓인다. 단순한 조리 행위를 넘어 세대를 잇는 의식행위에 가깝다. 어머니의 손길, 그 위 세대의 삶까지 국물 속에서 다시 숨을 쉰다. 식은 밥을 넣어도 좋고, 찹쌀과 멥쌀을 1.618:1 비율로 넣어 끓이면 구수한 국물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황금비율이라 불러도 좋을 맛의 어우러짐이다. 김치의 산미, 콩나물의 고소함, 따뜻한 죽의 온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몸 깊은 곳에 쌓인 냉기를 풀어주고, 허한 속을 편안히 덮어준다. 오늘날 웰빙과 로컬푸드, 발효식품이 주목받고 있지만, 엄마의 밥상이 사라지고 있다. 현대인들 특히 젊은이들의 건강이 무너지는 신호음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혹한 속에서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던 콩나물김치국과 콩나물김치죽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삶을 지탱해 준 지혜의 산물이었다. 몸이 먼저 기억하는 음식, 세대를 이어 치유를 전하는 음식이야말로 진정한 ‘오래된 미래’ 소울푸드일 것이다. 한 그릇의 따뜻한 국과 죽 속에서 우리는 과학과 전통, 영양과 정서를 동시에 마주한다. 그리고 그 순간 콩나물김치죽이 놓인 밥상을 본다.

 

참고 문헌

곽경자. 2026. 겨울철 국민 힐링 음식, 동치미의 미학. 변동불거의 시대, 가장 오래된 위안 막걸리 한 잔.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1-6).

곽경자. 1012. 변동불거의 시대, 가장 오래된 위안 막걸리 한 잔.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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