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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손맛, 잊혀지는 전남의 맛 언어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6-01-15 09: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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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연초의 한 모임에서 한 인사가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해 주시던 닭볶음이 그렇게 맛있었는데, 요즘은 맛이 예전 같지 않아 서글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닭볶음 전문점에서 음식을 사서 어머니께 가져다드린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자리에 있던 한 음식 전문가는 “나이가 들면 장맛이 달라진다”라고 설명했다.

 

연세가 들수록 미각과 후각의 감각이 둔해지고, 손의 감각 역시 예전 같지 않아 음식의 간과 풍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나이가 들면 짠맛과 단맛을 느끼는 역치가 높아져 음식이 싱겁게 느껴지거나, 반대로 간을 더 세게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노화로만 설명되기에는 아쉬운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손맛이 변했다는 말 속에는, 한 세대가 몸으로 축적해 온 감각의 언어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가 함께 담겨 있다. 전남 지역의 어르신들은 오랫동안 이 땅에서 나는 농수산물을 바탕으로 음식을 만들어 왔다.

 

제철에 나는 재료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어느 시점에 불을 줄이고 간을 멈춰야 하는지, 비 오는 날과 맑은 날의 차이를 어떻게 맛으로 조절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알고 있었다. 계량컵도, 정확한 레시피도 없었지만 손의 감각, 냄새, 색의 변화만으로 음식의 완성을 판단했다. 이른바 ‘손맛’은 단순한 개인기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환경과 식재료, 기후와 생활 리듬이 빚어낸 종합적인 감각 체계였다.

 

그러나 이 손맛은 기록되지 않았다. 말로 전해지고, 함께 부엌에 서며 자연스럽게 전승되던 감각이었기에 문서로 남지 않았고, 사진이나 영상으로도 충분히 담기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손맛과 함께 전승되던 ‘맛의 언어’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남의 어르신들이 사용하던 고유한 맛 표현들, 예컨대 간이 ‘알맞다’가 아니라 ‘곱다’, 국물이 ‘진하다’가 아니라 ‘속이 찬다’라고 표현하던 말들은 점점 일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맛을 설명하는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맛을 인식하고 구분하는 감각의 틀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즘은 거의 모든 음식이 레시피로 표준화되고, 글로벌한 맛의 기준에 맞춰 조정된다. 이런 시대에 지역 어르신들의 손맛과 말맛을 굳이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전남에 사는 사람들이 전남에서 생산된 농수산물로 만들어 온 음식은 그 자체로 ‘맞춤식’이었다. 토양과 바다, 기후와 노동 강도에 맞게 조정된 맛이었고, 그 지역 사람들의 몸에 가장 익숙한 음식이었다.

 

문제는 이 맞춤식의 지혜가 사라질 경우, 우리는 표준화된 레시피는 남기되 지역의 감각은 잃게 된다는 점이다. 음식은 재료와 조리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가, 어디에서, 어떤 환경 속에서 먹어 왔는지가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그 지역의 음식이 된다. 어머니의 닭볶음이 예전 같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은, 한 개인의 미각 변화이자 동시에 지역 음식 문화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손맛이 작동하던 맥락, 맛을 판단하던 기준, 지역 고유의 표현과 감각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은 레시피를 적는 일이 아니라, 지역의 삶과 몸의 기억을 남기는 일이다. 전남의 음식은 전남의 농수산물이 있어 가능했고, 그 농수산물은 전남 사람들의 손과 감각을 통해 비로소 음식이 되었다. 이 연결고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사라지고 있는 손맛과 말맛에 다시 귀를 기울일 때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6. 전남 친환경 농업, 식탁까지를 설계할 때.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5.1.14.).

허북구. 2025. K-푸드의 현지화 식재와 전남 농수산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5.12.10.).

허북구. 2025. 진남 농산물의 맛을 표현하는 언어의 힘.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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