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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셀리에의 스트레스 이론으로 읽는 치유농업 - 전주기전대학 치유농업과 최연우 교수
  • 기사등록 2026-01-15 09: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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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단어를 하나 꼽자면 ‘스트레스’다. 과도한 경쟁, 불확실한 미래, 관계의 긴장은 개인의 정신과 신체를 동시에 소모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주목받는 치유농업은 단순한 체험이나 여가를 넘어, 인간의 스트레스 반응을 이해한 과학적 토대 위에서 해석될 때 더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 이 지점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인물이 한스 셀리에(Hans Selye, 1907–1982)다.

 

한스 셀리에는 190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성장한 그는 젊은 시절부터 의학과 생리학에 관심을 보였고, 프라하 독일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을 거쳐 캐나다 몬트리올대학교(Université de Montréal)에서 연구와 교육 활동을 이어가며 평생을 스트레스 연구에 헌신했다.

 

1930년대 실험실에서 동물에게 다양한 자극을 가하는 과정에서, 원인이 서로 다른 자극에도 인체가 유사한 생리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그의 연구 전환점이었다. 이 관찰은 훗날 ‘일반적응증후군(GAS)’으로 정식화되었고, 셀리에는 스트레스를 심리적 현상을 넘어 생리학적 반응 체계로 설명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셀리에가 제시한 일반적응증후군은 스트레스 반응을 경고기–저항기–탈진기의 세 단계로 설명한다. 외부 자극이 가해지면 인체는 즉각 각성하고(경고기), 일정 기간 이를 견디며 적응하지만(저항기), 스트레스가 장기화되면 결국 에너지가 고갈되어 기능 저하와 질병으로 이어진다(탈진기). 오늘날 번아웃, 만성 피로, 우울과 불안은 이 탈진기의 사회적 표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셀리에는 스트레스를 무조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스트레스가 인간의 생존과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후 연구자들에 의해 유스트레스(eustress)와 디스트레스(distress)라는 개념틀로 확장·정리되었다. 이는 모든 자극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 가능하고 의미 있는 자극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논의를 전환시킨다.

 

치유농업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농작업과 식물 돌봄은 분명 신체적·감각적 자극을 동반한다. 흙의 촉감, 계절의 변화, 생명의 성장 과정은 몸과 마음을 깨운다. 하지만 이 자극은 경쟁이나 평가가 아닌, 자기 속도로 조절 가능한 리듬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점에서 치유농업은 디스트레스를 유스트레스로 전환하는 환경으로 이해될 수 있다.

 

셀리에의 이론에 비추어 보면, 치유농업은 저항기 단계에서 탈진으로 떨어지는 경로를 완화하고, 회복과 안정의 방향으로 스트레스 반응을 재조정하는 장치다. 그가 제시한 ‘적응 에너지(adaptation energy)’ 역시 인간의 회복 능력이 무한하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설명적 개념으로, 오늘날 만성 스트레스 사회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현대 사회는 이 적응 자원을 쉼 없이 소모시키지만, 치유농업은 이를 다시 채우는 공간이 된다. 반복성과 예측 가능성을 지닌 농업의 리듬은 생체 시계를 안정시키고 만성 각성 상태를 완화한다. 한스 셀리에는 말년에 “스트레스는 삶의 향신료”라고 했다. 문제는 양과 조합이다. 치유농업은 과도한 디스트레스를 덜어내고, 삶에 필요한 유스트레스를 다시 설계하는 실천적 공간이다. 스트레스의 과학을 이해할 때, 농업은 생산을 넘어 인간 회복의 기반으로 새롭게 읽힌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6. 자연의 결핍 시대, 피터 크라크 주니어가 말하는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1.11.).

최연우. 2026. 찰스 테일러의 인정 철학으로 읽는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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