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농촌지역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구조를 들여다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인구가 적고 지방세 기반이 약하다 보니, 전체 예산에서 공무원 인건비와 시설물 유지관리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특히 시설물 유지관리비의 경우, 시대적 수요에 맞춘다는 이유로 각종 시설을 지속적으로 신축해 온 결과, 이제는 관리 자체가 버거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한 지자체장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농촌 인구 감소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현실로 굳어지면서, 농촌의 ‘신축’에 대한 고민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보다 먼저 농촌 인구 감소를 경험한 대만과 일본은 그 해법을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에서 찾고 있다.
지난해 대만의 그린케어 스테이션(Green Care Station)을 몇 군데 방문한 적이 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모든 사례가 농촌 마을 안의 기존 건물, 즉 마을회관·빈집·창고·옛 학교 등을 리모델링해 고령자와 주민을 위한 복합 생활 돌봄 거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만의 그린케어 스테이션은 농촌의 고령화, 인구 감소, 돌봄 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농촌형 생활·돌봄·활력 거점이다.
제도 시행 자체는 비교적 최근이지만, 공간으로 활용되는 건물들은 오랜 시간을 품은 장소들이었다. 오래된 건물의 구조와 기억을 살리면서 새로운 기능을 입힌 방식이 인상 깊었다. 대만 농촌 재생의 또 다른 특징은 대규모 개발을 지양하고, 마을 단위의 소규모 리모델링을 기본 전략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된 민가와 농가 창고, 마을회관이 정책의 출발점이 된다.
이 공간들은 리모델링을 거쳐 로컬푸드 가공소, 농업 체험 공간, 공예 작업장, 청년 농업인의 창업 거점으로 활용된다. 한 농촌 마을에서는 사용하지 않던 창고를 개조해 주민 공동 부엌과 소규모 가공 시설을 만들었다. 신축 공장을 지을 경우 위생 기준 충족과 각종 인허가, 운영비 부담이 컸지만, 기존 건물을 활용하자 소규모 생산과 실험이 가능해졌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고칠 수 있고, 용도 변경도 비교적 자유롭다. 이러한 유연성이 청년 농업인과 지역 활동가들을 다시 마을로 불러들이는 힘이 되고 있다. 대만 농촌 정책의 핵심 평가지표는 단순하다. “이 공간에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오는가.” 건물의 크기나 외형보다 사용 빈도와 체류 시간이 더 중요하다.
일본 농촌에서는 ‘아키야(空き家)’라 불리는 빈집이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수백만 채에 이르는 빈집은 한때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농촌 재생의 자원으로 전환되고 있다. 일본의 여러 지방자치단체는 새 주택 건설을 억제하는 대신, 빈집을 고쳐 쓰는 데 보조금을 집중해 왔다. 낡은 농가 주택은 귀농·귀촌인의 거처로 활용되고, 마을 한복판의 빈집은 소규모 카페나 공동 부엌, 고령자 돌봄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대단한 시설’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존 구조를 최대한 살리고, 최소한의 개보수만으로도 사람이 머무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 일본의 한 농촌 지역에서는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치유농업과 고령자 데이케어를 결합한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교실은 작업실과 식당으로, 운동장은 텃밭과 치유 정원으로 바뀌었다. 새 건물을 지었다면 막대한 예산과 유지비가 필요했겠지만, 기존 학교를 활용함으로써 비용은 줄고 접근성은 높아졌다.
무엇보다 주민들에게는 “익숙한 공간에서 다시 만난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크다. 일본이 리모델링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한 미관 개선이나 비용 절감이 아니라, 관계와 기억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습은 대만의 그린케어 스테이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과도 닮아 있다.
대만과 일본의 사례가 공통적으로 말해 주는 것은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에서 신축은 미래의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사람이 줄어들수록 관리 인력은 부족해지고, 유지비 부담은 커진다. 반면 리모델링은 되돌릴 수 있는 투자다. 실패하더라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다음 세대에게 과도한 짐을 남기지 않는다.
특히 치유농업, 농촌 복지, 농촌 관광과 결합할 때 리모델링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 된다. 치유는 새 건물보다 시간이 쌓인 공간에서 더 깊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제 농촌 정책의 질문은 명확해져야 한다. “얼마나 새로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남아 있는 공간을 어떻게 다시 살릴 것인가”다. 일본과 대만은 이미 이 질문에 답을 내리고 실행하고 있다.
인구 감소 시대의 농촌은 성장의 논리가 아니라, 유지와 전환의 논리로 설계되어야 한다. 농촌을 돌아보면 각종 사업을 통해 지어진 건물들이 비어 있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기존 건물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새로운 사업을 이유로 또 다른 건물을 짓는 것은 결국 지역의 부담으로 남기 쉽다. 리모델링은 후퇴가 아니다. 오히려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임을 지금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농촌의 빈집.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5.2.26.).
허북구. 2025. 프랑스 농촌 빈집의 변신, 살아 있는 마을.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5.1.15.).
허북구. 2021. 늘어나는 농촌 빈집과 워케이션 농업.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