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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시대, 전남의 토종 식물은 밥상을 지켜 낼 수 있을까?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6-01-17 09: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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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이상기후는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다. 전남의 들과 밭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기후변화는 이미 일상이 되었다. 봄은 짧아지고 여름은 길어졌으며, 폭염과 국지성 폭우, 잦은 태풍은 농사의 기본 전제를 흔들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수확량 감소가 아니다. 오랜 시간 이 땅의 기후와 토양에 맞춰 적응해 온 지역종과 토종 식물들이 더 이상 ‘자기 자리’를 찾기 어려운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전남의 밥상은 지역종과 토종 식물 위에 세워져 왔다. 논에서 이어져 온 벼와 콩, 바닷바람과 습기를 견뎌 온 채소, 산과 들에서 채집되고 재배되어 온 나물과 약용식물은 전남 식문화의 근간이다. 이 식물들은 특정 품종이 아니라, 지역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선택의 결과였다. 토종이라는 말에는 유전적 특징만이 아니라, 그 땅의 기후·토양·재배 방식과 함께 축적된 생활의 기억이 담겨 있다.

 

그러나 기후환경은 그 기억을 더 이상 존중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평균 기온의 상승은 작물의 생육 시기를 앞당기거나 왜곡시키고, 갑작스러운 한파와 폭염은 개화와 결실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집중호우는 배수가 취약한 밭을 무력화시키고, 병해충은 과거와 다른 시기와 강도로 발생한다. 이러한 변화는 표준화된 개량품종뿐 아니라, 오히려 지역의 환경에 맞춰 형성된 지역종과 토종에게도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한다. 과거에는 ‘익숙한 환경’이었지만, 이제는 그 익숙함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종과 토종 식물은 여전히 중요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전남은 평야, 구릉, 산지, 해안이 복합적으로 분포한 지역으로, 미기후의 차이가 크다. 이 속에서 다양한 지역종과 토종이 공존해 왔다는 사실은, 기후변화 시대에 단일 해법이 아닌 다중 해법을 제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의미한다. 어떤 품종이 특정 조건에서 실패하더라도, 다른 계통이 이를 보완하는 구조는 위기 대응의 중요한 자산이다.

 

문제는 이 잠재력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배 환경의 변화는 농가로 하여금 안정적인 수량과 대면적의 기계화 적용성이 높은 외래 개량품종으로 이동하게 만들고, 지역종과 토종은 점차 밭에서 밀려난다. 밥상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손질이 번거롭고, 외형이 균일하지 않으며, 조리법이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지역종과 토종 식물은 선택에서 제외되기 쉽다. 밥상에서 사라지는 식물은 결국 밭에서도 사라진다.

 

따라서 지역종과 토종을 지키는 일은 단순한 보존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다시 먹는 것, 즉 식문화로 되돌리는 일이다. 장과 김치, 국과 나물, 제철 반찬 속에서 지역종과 토종이 자연스럽게 쓰일 때 재배의 이유도 생긴다. 학교 급식과 공공 급식, 지역 음식점과 가공식품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지역종과 토종은 ‘취약한 유산’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식재료’가 된다.

 

정책의 역할도 분명하다. 지역종과 토종 식물은 유전자원 보존의 대상이자,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식문화 기반 인프라다. 변화된 환경 조건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적응성 품종 개발, 재배 가능성을 다시 검토하는 연구, 소규모 다품종 재배를 감당할 수 있는 지원 체계, 로컬푸드와 연계한 가격 보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농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다.

 

결국 질문의 답은 조건부다. 기후변화 시대에도 전남의 지역종과 토종 식물은 밥상을 지켜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환경이 돌아올 때가 아니라, 변화된 환경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선택될 때 가능하다. 기후변화는 위기이지만 동시에 전환의 계기다. 지역의 환경에서 자라온 지역종과 토종은 전남 밥상의 기억이자, 우리가 기후변화 시대에 붙잡아야 할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다. 무엇을 재배하고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결정이, 그들의 생존을 좌우한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0. 진도 토종 마늘과 포항 과메기.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0-11-09).

허북구. 2020. 나주에서 만난 토종벼, 그 의미와 가치.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0-10-16).

허북구. 2020. 전남 토종감 그리고 남도의 맛과 멋.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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