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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권 치유농업, 도약을 위해 기술석사가 필요하다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6-02-05 09: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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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전라권은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의 식탁’이라 불릴 만큼 농업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넓은 평야, 온화한 기후, 다양한 작물, 그리고 전통 식문화와 농촌 공동체가 살아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라권 농업이 직면한 현실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고령화, 인구 유출, 농가 소득 정체, 기후 위기, 그리고 농업의 사회적 역할 약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동시에 누적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농업은 단순한 생산 산업을 넘어, 지역 사회를 회복시키고 사람을 치유하는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그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치유농업’이다. 치유농업은 농업과 자연, 인간의 심리와 건강, 그리고 지역 문화와 관광을 연결하는 융합 산업이다. 농작물 재배 기술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프로그램 설계 능력, 심리적 이해, 공간 연출, 서비스 운영, 안전관리, 그리고 수익 모델까지 복합적인 역량이 필요하다.

 

지금 전라권에는 치유농업은 있지만, 치유농업 전문가는 없다. 다시 말해 치유농업은 농사 기술이 아니라 ‘서비스 설계 산업’에 가깝다. 문제는 이러한 역량을 체계적으로 길러주는 고급 교육 시스템이 전라권에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현재 많은 치유농장 운영자들은 농업 경험은 풍부하지만, 치유 프로그램 기획이나 고객 응대, 효과 평가, 사업 모델 설계는 대부분 현장 시행착오에 의존하고 있다. 치유농업 관련 정책과 시범사업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실제로 설계하고 운영할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치유농업이 정책 구호로는 확산되고 있지만 산업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전문 인력의 공백’이다. 따라서 반드시 등장해야 할 개념이 ‘치유농업 기술석사’다. 치유농업 기술석사는 논문을 쓰는 연구자가 아니라, 치유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현장 전문가를 양성하는 실무형 석사 과정이다. 치유농업 이론을 기반으로 하되, 연구보다 프로젝트 중심 교육이 이루어진다.

 

치유 프로그램 개발, 농촌 치유 공간 설계, 참여자 심리 반응 분석, 안전 매뉴얼 구축, 지역 자원 연계 모델 설계 등 실제 농장에서 필요한 과제를 수행하며 졸업하는 구조다. 즉, 연구자를 양성하는 과정이 아니라, 치유농업을 실제로 ‘운영하고 기획할 수 있는 전문가’를 만드는 과정이다.

 

전라권은 치유농업 기술석사 과정을 운영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농촌 고령화와 유휴 농지, 전통 마을, 발효 문화, 정원 자원, 숲과 강, 사찰과 서원, 농촌 체험 인프라까지 이미 치유 콘텐츠의 재료는 충분하다. 문제는 이 자원을 산업으로 엮어낼 현장 전문 설계자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 전라권 치유농업의 한계는 콘텐츠 부족이 아니라, 콘텐츠를 ‘산업 언어로 번역할 인력의 부재’다. 기술석사는 바로 이 번역가를 양성하는 시스템이다.

 

더 중요한 점은, 치유농업 기술석사가 단순히 농민 교육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과정은 청년 농업인, 귀농·귀촌인, 지역 문화기획자, 사회복지 종사자, 관광 기획자, 공공기관 실무자까지 포괄하는 지역형 전문 인력 양성 모델이 될 수 있다. 즉, 농업을 매개로 의료·복지·관광·교육·문화 산업을 연결하는 지역 융합 인재를 길러내는 플랫폼이다. 전라권이 직면한 ‘청년 유출 문제’ 역시 치유농업 기술석사를 통해 일정 부분 해결 가능하다. 단순 농사보다 ‘치유 콘텐츠 기획자’라는 직업 모델은 청년에게 훨씬 매력적인 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라권에서는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주기전대학에 치유농업과가 개설되어 있다. 지방 대학 대부분이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치유농업과는 정원 이상의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 특히 재학생 상당수가 이미 대학 졸업자이며, 치유농장 운영자, 귀농인, 관련 종사자들이다. 이는 치유농업이 단순한 진로 탐색이 아니라, 현장에서 ‘더 배우기 위해 다시 대학을 찾는 분야’라는 점을 보여준다. 즉, 현장 수요는 이미 존재한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다. 학부 과정은 있지만, 이를 심화시킬 기술석사 과정은 현재 전라권에 단 한 곳도 개설되어 있지 않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곳이 없는 구조다. 치유농업이 정책적으로 중요하다면, 이제는 단순 교육이 아니라 ‘전문 인력 양성 체계’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기술석사가 없는 치유농업은 결국 취미 수준의 체험 산업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치유농업 기술석사의 진정한 의미는 학위 그 자체가 아니라, 지역 농업의 위상을 바꾸는 데 있다. 지금까지 농업은 지원의 대상,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치유농업은 농업을 ‘서비스 산업’이자 ‘회복 산업’으로 재정의한다. 기술석사는 이 전환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인력 생산 시스템이다. 전라권이 치유농업 기술석사를 도입한다는 것은, 단순히 학과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농업의 미래 역할을 제도적으로 선언하는 행위에 가깝다.

 

이제 전라권 농업에 필요한 것은 농업을 시대의 수요에 맞게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치유농업 기술석사는 바로 그 사람을 만드는 가장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다. 농업이 사람을 먹여 살리는 산업에서, 사람을 살리는 산업으로 전환되는 출발점. 전라권 치유농업 기술석사는 그 전환의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전라권에는 그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6. 전남 농업, 교육부터 다시 점검할 때.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6-01-09).

최연우, 송미진, 김현주. 허북구. 2024. 치유농업과의 재학생 특성과 웰니스 관광 창업의 관계 연구. 한국농어촌관광학회지 27(2):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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