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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치유 화훼장식이라는 처방전과 힘 - 전주기전대학 치유농업과 송미진 교수
  • 기사등록 2026-02-21 09: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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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입춘이 지나고 강바람에 묻어오는 공기의 결이 달라졌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누구에게나 설렘의 계절이지만, 역설적으로 현대인들에게는 가장 취약한 시기이기도 하다. 계절의 급격한 변화에 몸이 적응하지 못해 겪는 춘곤증부터, 타인과 세상을 향해 돋아나는 화사한 생동감에 대비되어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인 '봄철 우울증'까지. 이 눈부신 계절에 누군가는 여전히 겨울의 그늘 속에 머물러 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상담이나 약물이 아닌, 흙을 뚫고 올라온 생명력을 손끝으로 마주하는 일, 바로 '치유화훼장식'이다. 치유화훼장식은 꽃을 예쁘게 꽂아 공간을 장식하는 '미적 행위'에 그치지 않고, 그것은 식물의 생명 주기에 인간의 감정을 투사하고, 꽃을 다듬는 반복적인 동작을 통해 흩어진 집중력을 모으는 '심리적 의례'에 가깝다.

 

특히 봄의 소재들은 그 자체로 강력한 치유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앙상한 가지를 뚫고 피어난 노란 산수유와 개나리, 솜털을 두른 목련의 봉오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생존'과 '회복'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직관적으로 깨닫게 한다. 꽃을 만지는 과정은 오감을 깨우는 과정이다. 향긋한 프리지어의 향기는 뇌의 후각 신경을 자극해 즉각적인 정서 안정을 유도한다.

 

튤립의 매끄러운 꽃잎과 유칼립투스의 잎맥을 만지는 촉각적 경험은 스마트폰의 매끄러운 액정에 갇혀 있던 현대인의 감각을 현실로 끌어내린다. 화훼장식의 핵심 기법 중 하나인 '분류'와 '배치'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명상과도 같다. 줄기를 사선으로 자르고 오아시스에 정성껏 꽂아 넣는 행위는 타인에 의해 휘둘리던 삶의 주도권을 다시금 내 손안으로 가져오는 상징적인 작업이다.

 

치유화훼장식의 진정한 가치는 '돌봄의 역전'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흔히 식물이 인간의 돌봄을 받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치유의 현장에서는 식물이 인간을 돌본다. 사회적 고립을 겪는 청년이나 인지 저하를 앓는 노인이 정성껏 꽃바구니를 만들어 누군가에게 선물하거나 자신의 공간에 둘 때, 그들은 '보살핌을 받는 대상'에서 '생명을 가꾸고 기쁨을 선사하는 주체'로 거듭난다.

 

봄꽃이 피어나는 짧은 찰나를 포착해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멈춰 있던 자신의 삶 또한 다시 흐를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다. 최근 치유산업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며 지자체마다 '치유 정원'이나 '원예 치료 프로그램'을 확충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치유화훼장식이 일시적인 체험 행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책적 뒷받침이 정교해져야 한다.

 

원예 지식과 심리 상담 능력을 겸비한 전문 인력의 배치는 물론, 계절별 치유 식물에 대한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병원이나 학교, 복지시설 내에 상시로 꽃을 접하고 만질 수 있는 '그린 처방실'을 운영하는 등 일상적인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봄(Spring)이라는 단어에는 '용솟음치다'와 '봄철'이라는 뜻이 공존한다. 억눌렸던 생명이 대지를 뚫고 솟구치듯, 우리 내면의 회복력도 식물을 만지는 손길 끝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꽃병 하나, 베란다 모퉁이에 심은 보라색 무스카리 한 포기가 건네는 위로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올봄에는 스스로에게 초록빛 처방전을 건네보자. 화려한 꽃다발이 아니어도 좋다. 시장 모퉁이에서 산 프리지어 한 단을 다듬으며 그 향기에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식물이 건네는 무언의 위로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 마음에도 비로소 진정한 봄이 찾아올 것이다. 꽃은 말하지 않지만, 그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살아있음의 경이로움을 웅변하고 있다.

 

참고문헌

송미진. 2026. 치유농업 공간과 설 명절의 고향이라는 이름의 처방전.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칼럼(2026-2-13).

치유농업과 사회학, 그리고 2026년 치유농업 융합행사.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칼럼(20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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