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부엌은 밥을 짓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시간이 익어 가는 자리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그 부엌에서 막걸리로 식초를 만드셨다. 소위 ‘댓병’이라 부르던 큰 소주병에 막걸리를 부어 넣고, 병 입구에는 솔잎을 꽂아 느슨하게 막아 두었다. 완전히 밀봉하지 않고 공기가 통하도록 둔 것은 지금 생각하면 초산 발효에 필요한 산소를 확보하기 위한 생활의 지혜였다.
겨울철이면 그 병은 아궁이 옆이나 부뚜막 위에 놓였다. 장작불이 꺼진 뒤에도 남아 있는 은근한 온기가 발효를 도왔다. 희뿌옇던 막걸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윗부분부터 조금씩 맑아졌다. 막걸리 속 고형분이 가라앉고, 공기와 맞닿은 표면에서는 초산균이 알코올을 서서히 초산으로 바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식초를 만드는 초산균은 산소를 필요로 하므로 발효는 액체의 상층부에서 먼저 진행된다. 그래서 위쪽에서부터 새콤한 향이 은근히 올라왔다.
어머니는 병을 조심스럽게 기울여 윗부분의 맑은 액을 따라내어 무침에 사용하셨다. 병 속 전체가 완전히 식초로 변하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발효가 진행된 윗부분을 쓰고 다시 시간을 두는 방식이었다. 뒤섞지 않고 부분적으로 따라 쓰는 그 모습이 어린 나에게는 무척 신기하게 보였다. 나는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병에 붓는 일을 맡으며, 액체가 다른 성질로 변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곤 했다.
그 막걸리 식초는 집안 무침 요리의 중요한 재료였다. 작은 바닷생선 무침이나, 미나리에 갑오징어를 썰어 넣어 버무릴 때 마지막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그 식초였다. 산미는 부드러웠고 향은 깊었다. 오늘날의 공장 식초처럼 날카롭지 않고, 어딘가 둥근 맛이 났다. 그 안에는 장작불의 온기와 부엌의 시간이 함께 녹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그 부뚜막의 기억이 내 삶의 방향을 정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발효와 식초에 대한 궁금증은 공부로 이어졌고, 연구로 확장되었다. 나는 결국 발효와 식초를 주제로 학위를 받았고, 지금도 식초를 만드는 일을 하고, 강단에서 발효를 이야기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알코올이 산소와 만나 초산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화학식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출발점은 여전히 부뚜막 위의 병 속에서 맑아지던 그 윗물의 장면이다.
발효는 기다림의 학문이다. 서두르면 맛이 거칠어지고, 방치하면 상한다. 적절한 온기와 숨 쉴 틈을 주어야 깊은 맛이 난다. 사람의 몸과 마음도 다르지 않다. 치유 역시 기다림 속에서 익어 가는 또 하나의 발효 과정인지 모른다. 어머니는 과학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몸으로 그 원리를 알고 계셨다. 솔잎을 꽂아 두었던 병 입구의 작은 틈은 발효가 숨 쉬는 자리였다.
나는 다양한 종류의 막걸리를 이용해 가정에서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식초를 만들 수 있도록 실험을 해오고 있다. 발효를 생활 속에서 다시 경험하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부뚜막의 온기까지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온기는 가족의 삶과 시간이 함께 숙성된 온도였기 때문이다.
희뿌연 막걸리가 맑은 식초로 변해 가던 그 장면은 내 연구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나는 발효는 썩음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어머니의 부엌에서 처음 배웠다. 그리고 치유란, 몸과 마음이 자기 속도로 맑아져 가는 발효의 시간이라는 것도 함께 배웠다. 그리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막걸리가 식초로 변해 가는 그 느린 시간을 한 번쯤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기다림이 맛이 되는 순간을 함께 느껴 보았으면 한다.
참고 문헌
곽경자. 2026. 오래된 생활 발효, 고문헌 속 식초와 수치.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3-3).
곽경자. 2026. 구황작물 메밀, 전통 발효가 빚은 설날의 메밀묵.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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