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심리학자 줄리언 로터(Julian Rotter, 1916–2014)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책임지는가를 탐구한 학자이다. 그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대공황을 겪으며 성장한 경험은 개인의 행동을 단지 성격의 문제로 보지 않고, 사회적 맥락과 학습의 산물로 이해하게 하는 토대가 되었다.
로터는 브루클린대학교에서 학부를 마친 뒤, 아이오와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1941).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 육군에서 임상심리학자로 복무하며 군인들의 적응과 정서 문제를 다루었다. 전후에는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오랜 기간 교수로 재직하며 이론을 발전시켰고, 이후 코네티컷대학교에서 연구를 이어갔다. 그는 2014년 1월 6일 97세로 생을 마쳤다.
그가 제시한 핵심 개념은 통제소재(locus of control)이다. 통제소재는 개인이 어떤 결과의 원인을 어디에 두는가에 관한 인지적 경향을 뜻한다. 결과를 자신의 노력과 선택에 귀속하는 내적 통제소재(internal locus of control)와 운이나 타인, 환경과 같은 외부 요인에 귀속하는 외적 통제소재(external locus of control)로 구분된다.
이 개념은 치유농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치유농업은 농업 활동을 매개로 신체적·정서적 회복을 돕는 구조화된 실천이다. 이때 핵심은 ‘즐거운 경험 제공’이 아니라 ‘주도적 경험 형성’이다. 참여자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변화의 일부를 만들어 가는 존재가 될 때 통제 감각은 서서히 내부로 이동한다.
예를 들어 씨앗을 심고 물을 주는 행위는 단순 노동이 아니다. 내가 한 선택과 행동이 일정 시간이 지나 식물의 성장으로 나타난다. 물론 날씨나 토양 조건은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내가 기여한 부분이 있다”라는 감각은 분명하다. 이 반복 경험은 외적 통제 경향을 완화하고, 현실적 내적 통제 감각을 강화한다.
치유농업은 강한 자극을 통해 감정을 흔드는 방식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시간 구조 속에서 작은 성공 경험을 축적하는 방식이다. 같은 장소, 비슷한 활동, 반복되는 흐름은 참여자에게 안정감을 제공한다. 이러한 안정성은 불안을 낮추고 자기 조절 능력을 높인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인식은 “나는 이 범위 안에서 선택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바뀐다.
집단 기반 치유농업에서는 통제의 균형도 학습된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협력 속에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경험은 건강한 통제 개념을 형성한다. 이는 전능감이 아니라, 현실적 자기 효능의 회복이다. 로터가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y)에서 강조한 것처럼, 인간은 환경 속 상호작용을 통해 기대와 신념을 학습한다. 치유농업은 바로 그 학습의 장이다.
로터의 사유는 오늘날 농장과 텃밭에서도 유효하다. 흙을 고르고 씨앗을 심는 행위는 통제의 감각을 다시 연결하는 경험이다. 치유농업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통제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작은 영역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 작은 발견의 반복이 삶의 방향키를 조금씩 안쪽으로 이동시킨다. 로터의 통제소재 이론은 치유농업을 단순한 체험 활동이 아니라, 주도성과 자기 효능을 회복하는 심리적 구조로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이론적 토대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덧붙일 수 있다. 치유농업 현장에서 통제소재의 변화는 평가 도구로도 활용될 수 있다. 프로그램 초기에 외적 통제 경향이 강했던 참여자가 회기가 진행되면서 스스로 과제를 선택하고, 실패를 환경 탓이 아니라 조정 가능한 요소로 해석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분명한 치유 신호다. 텃밭 관리 일지 작성, 성장 관찰 기록, 수확 계획 세우기와 같은 구조화된 활동은 기대(expectancy)를 구체화하고, 강화 가치(reinforcement value)를 체험적으로 확인하게 한다. 이렇게 통제 감각이 축적될 때 치유농업은 일회성 체험을 넘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과정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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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우. 2026. 입춘과 우수, 치유의 문을 열다.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