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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디 달은 눈 맞은 파, 제철 파 효능과 파김치가 만든 건강 밥상 - 곽경자 이학박사(곽경자 식초담다 대표, 전남도립대학 식품생명과학과 겸…
  • 기사등록 2026-03-17 09: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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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겨울의 끝자락, 아직 땅속에는 찬 기운이 남아 있지만 밭에서는 가장 먼저 봄의 기운을 밀어 올리는 채소가 있다. 바로 파다. 얼어붙은 겨울 땅속에 뿌리를 깊이 담그고, 매서운 북풍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연한 새순을 밀어 올리는 파의 생명력은 자연의 경이로움 그 자체다. 이 시기의 파는 여름의 파와 다르다. 매운 기운은 한결 부드러워지고 대신 은은한 단맛과 깊은 향이 살아난다. 우리 조상들은 “눈 맞은 파가 가장 달다”하여 밥이 뜸을 들일 때 파를 올려 파숙지로 또는 파김치로 면역력을 깨웠다.

 

겨울을 견디는 동안 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당을 축적하고 비타민C를 차곡차곡 다진다. 그 결과 단맛은 올라가고 향 성분은 농축된다. 식물생리학적으로 보면 혹독한 환경이 만들어낸 자연의 준 파이토케미컬이다. 그래서 겨울 파는 조리법이 단순할수록 그 본래의 맛이 잘 드러난다.

 

우리 조상들은 이 시기의 파를 가장 소박한 방식으로 먹었다.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파숙지’다. 어린 파를 살짝 데쳐 간장과 참기름, 마늘과 깨소금으로 가볍게 무친나물이다. 끓는 물에 잠깐 데치는 과정은 파의 강한 알싸함을 누그러뜨리고 조직을 부드럽게 한다. 동시에 파 속에 있던 당 성분이 입안에서 더욱 또렷하게 느껴진다. 겨울 끝자락 밥상에 올라온 파숙지는 화려하지 않지만 몸을 따뜻하게 하고 속을 편안하게 하는 담백한 보약과도 같다.

 

그러나 발효의 관점에서 볼 때 파의 진짜 잠재력은 ‘파김치’에서 드러난다. 파김치는 파의 향 성분과 젓갈 발효가 결합한 전통 발효음식이다.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멸치젓이나 새우젓을 더해 버무린 뒤 숙성시키면 파의 알리신 성분과 젓갈의 아미노산이 만나 깊은 감칠맛을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젖산균이 증식하고 발효가 진행되면 맛은 더욱 부드럽고 깊어진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유기산과 효소는 장내 미생물 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발효식품을 연구하는 사람의 시선에서 보면 파는 매우 흥미로운 식재료다. 파에 풍부한 알리신은 강한 항균 작용을 가지고 있으며, 혈액순환을 돕는 기능성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옛 한의서에서는 파의 흰 부분을 ‘총백(葱白)’이라 하여 감기 초기에 사용하는 약재로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파에는 프락탄이라는 식이섬유가 포함되어 있어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되며,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젖산균과 만나 장 건강을 돕는 환경을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파가 단독으로도 뛰어난 식재료이지만 다른 음식과 만나면 그 가치가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특히 돼지고기와의 조합이 대표적이다. 알리신은 비타민 B1의 체내 흡수를 돕기 때문에 돼지고기 수육에 파김치를 곁들이거나 파 불고기를 만들어 먹는 전통 음식에는 과학적 이유가 숨어 있다. 우리 조상들은 뛰어난 감각과 경험과 지혜로 이런 조합을 만들어냈다.

  

한국 밥상에서 파는 늘 곁에 있는 향채다. 된장국과 찌개, 김치와 나물 어디에 들어가도 음식의 풍미를 깨운다. 하지만 겨울 끝자락에 먹는 파숙지 한 접시와 파김치 한 젓가락은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그것은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겨울을 견딘 식물의 생명력이 농부의 손 발을 깨워 다가올 봄을 준비하는 밥상이다.

 

발효는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지혜가 만나는 지점에서 완성된다. 겨울의 추위를 이겨낸 파가 우리의 밥상에서 발효의 힘으로 다시 살아나는 순간, 우리는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음식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매년 겨울이 끝날 무렵 파숙지와 파김치를 먹으며 이렇게 생각한다. 봄은 이미 밥상 위에서 시작되고 있다.

 

참고 문헌

곽경자. 2026. 어머니의 삶의 지혜, 부뚜막 막걸리 식초.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3-10).

곽경자. 2026. 오래된 생활 발효, 고문헌 속 식초와 수치.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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