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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심 심리학이 여는 회복의 농업, 칼 로저스와 치유농업 - 전주기전대학 치유농업과 최연우 교수
  • 기사등록 2026-03-21 08: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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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성장하고 회복하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인간중심심리학의 대표 학자인 칼 조저스(Carl R. Rogers, 1902–1987)는 이를 ‘자기실현 경향(actualizing tendency)’이라 설명했다. 그는 인간을 결핍이나 문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적절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 변화하고 치유하는 존재로 이해했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치유농업의 철학적 기반과 깊이 맞닿아 있다.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어떤 문제의식 속에서 이론을 전개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1902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나 엄격하고 종교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규율과 도덕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내면 경험과 감정을 깊이 성찰하는 태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장 배경은 훗날 인간의 ‘내적 경험’을 중시하는 그의 이론으로 이어진다.

 

대학 시절 그는 처음에는 위스콘신대학교 입학해서 농학을 공부하며 자연과 생명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이후 종교와 인간 이해에 관심을 두며 진로를 모색하였으나, 인간의 문제를 교리로 설명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심리학으로 전향해 콜롬비아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전공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이동은 단순한 전공 변경이 아니라, 인간을 외부의 기준이 아닌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태도’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훗날 그의 상담 이론의 핵심 토대가 된다.

 

그는 미국의 여러 대학과 상담기관에서 활동하면서 기존의 지시적이고 권위적인 상담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상담자가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돕는 것이 더 본질적이라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비지시적 상담(non-directive therapy)’을 발전시켰고, 이후 이를 ‘인간중심 상담(person-centered therapy)’으로 체계화하였다.

 

로저스는 치료적 관계에서 세 가지 핵심 조건을 제시했다.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공감적 이해, 그리고 진실성이다. 이는 단순한 상담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대하는 기본 원리이며, 치유농업의 현장에서도 그대로 구현될 수 있는 요소들이다. 먼저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은 치유농업의 출발점이다.

 

농업 활동에서는 결과의 완성도나 속도가 절대적 기준이 되지 않는다. 씨앗을 심고 돌보는 과정에서 참여자는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주체’가 된다. 작물이 잘 자라지 않더라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환경은 참여자에게 “나는 이대로 괜찮다”는 경험을 제공하며, 자기 수용의 기반을 형성한다.

 

또한 농업 활동은 공감 능력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식물은 말이 없지만, 물과 햇빛, 토양 조건에 따라 섬세하게 반응한다. 참여자는 이러한 변화를 관찰하고 돌봄을 조정하면서 ‘타자의 상태를 읽는 감각’을 기르게 된다. 이 감각은 인간 관계로 확장되어,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치유농업이 단순한 체험 활동을 넘어 관계 회복의 장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실성 역시 치유농업의 핵심 요소이다. 농업은 꾸밈이나 형식이 통하지 않는 영역이다. 식물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실제 환경과 돌봄의 질에 반응한다. 따라서 참여자는 자신의 상태를 숨기기보다 인식하게 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자기와 경험이 일치하는 상태를 촉진하며, 내면의 통합으로 이어진다.

 

치유농업은 또한 ‘시간의 재구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로저스의 이론과 깊이 연결된다. 현대 사회는 속도와 효율을 강조하지만, 농업은 계절과 생장의 리듬을 따른다. 이 느린 시간은 인간이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충분히 느끼고 통합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이는 경험의 폭을 넓히고, 자기 이해를 깊게 만드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공동체 기반의 치유농업에서는 이러한 효과가 더욱 강화된다. 함께 씨를 뿌리고 수확을 나누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경쟁이 아닌 협력을 경험한다. 조건 없이 서로를 인정하는 관계 속에서 인간은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의 본질을 다시 배우게 된다. 이는 인간중심심리학이 지향하는 건강한 인간관계의 모습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결국 치유농업은 생산 중심의 농업에서 관계 중심의 농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무엇을 얼마나 생산했는가보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경험과 관계가 형성되었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로저스의 이론은 이 전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치유농업의 또 다른 특징은 ‘시간의 리듬’이다. 빠름과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와 달리, 농업은 계절과 생장의 흐름을 따른다.

 

이러한 느린 시간은 인간의 내면을 안정시키고, 자기 인식을 더욱 깊게 만든다. 이는 로저스가 강조한 ‘경험의 장’을 확장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의 대상이다. 치유농업은 이러한 철학을 현실의 공간에서 구현하는 실천이다. 흙과 식물, 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발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회복하게 된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6.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치유농업: 무의식, 자연, 그리고 회복의 장.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3.19.).

최연우. 2026. 조너선 하이트의 긍정심리학, 자연경험, 그리고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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