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3월의 들녘은 아직 겨울을 다 떠나보내지 못했다. 새벽이면 된서리가 내리고 온 들판은 하얗게 얼어있고, 바람 끝에는 냉기가 남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냉기의 가장자리에서 가장 먼저 봄을 밀어 올리는 것이 있다. 쑥이다. 들판 볕 좋은 가장자리에서 연둣빛 어린순을 내미는 쑥은 한국인의 밥상에서 단순한 나물이 아니다.
쑥은 환절기로 약해진 몸의 면역력을 키우는 보약이고, 계절의 신호였으며, 그 향을 빚어내는 방식이 우리 조상들이 삶을 품어내는 태도이다. 한의학에서 쑥은 ‘애엽(艾葉)’이라 불린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찬 기운을 몰아내며, 통증을 줄이는 온성 약재로 오랫동안 인식돼 왔다. 온경지혈, 산한지통, 안태라는 한의학적 표현은 다소 낯설지만, 결국 그 뜻은 분명하다.
겨울을 지나며 움츠러든 몸을 덥히고, 냉기로 인해 막히고 아픈 기운을 풀어내며, 삶의 연약한 자리를 보살핀다는 뜻이다. 그래서 쑥은 봄나물이면서 동시에 민간의학으로 여성의 삶과 가까운 약초로 사랑받아 왔다. 흥미로운 것은 쑥의 이중적 성질이다. 쑥은 따뜻한 식물로 알려져 있으나 생쑥 자체는 냉한 성질을 지닌다.
쑥은 불을 만나면 성질이 달라진다. 열을 통과하며 몸을 덥히는 음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점에서 쑥국은 쑥의 성질을 바꾸는 조리법이 된다. 발효를 업으로 살아가는 필자의 시선에서 보면 쑥국은 자연의 재료가 불과 물, 시간과 손맛을 거치며 다른 성질로 전환되는 ‘종합예술’인 것이다. 날것이 익힘을 통해 새로운 기운을 얻듯, 겨울을 건넌 몸 또한 한 그릇의 쑥국으로 다시 풀리고 깨어난다.
남해안과 서해안 사람들에게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가는 길목의 보약은 오래전부터 애탕국이었다. 어린 쑥의 부드러운 향과 굴의 깊은 감칠맛, 그리고 된장의 구수한 발효 향이 한데 어우러진 쑥된장국은 한국 절기 음식이다. 쑥은 들의 향을 품고, 굴은 바다의 숨결을 머금는다. 여기에 대표적인 발효식품인 된장이 더해지면 산과 바다, 시간과 미생물, 사람의 손맛이 한 그릇 안에서 담아낸다.
발효란 삭힘이 아니라 어울림의 기술이고, 쑥국은 그 어울림이 빚어낸 봄의 국물이라 할 만하다. 이 음식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도 있다. 멸치나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된장을 푼 뒤 굴을 먼저 넣어 살짝 익히고, 마지막 순간 쑥을 넣어 한소끔만 끓여야 한다. 쑥은 오래 끓이면 향이 죽고 색이 탁해지며, 굴 역시 지나치게 익으면 질겨진다.
절기 음식은 재료를 함부로 다뤄서는 안된다. 가장 알맞은 때를 알고, 가장 짧고 정확한 시간을 지키는 감각이 중요하다. 그래서 애탕국은 단순한 계절국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을 존중하는 한국 음식문화의 태도이기도 하다.
요즘은 냉동기술 덕분에 봄의 쑥과 겨울 굴을 저장해 두었다가 여름에도 애탕국을 끓여 먹는다. 계절의 경계는 예전보다 흐려졌지만, 그 한 그릇이 품은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더운 여름날, 부드러운 봄 햇살을 머금고 자란 쑥으로 끓여낸 애탕국 한 그릇은 뜨거운 햇살을 내려놓고 계절의 위를 걷게 한다.
애탕국, 쑥국의 계절이다. 겨울의 냉기를 몸 밖으로 밀어내고 봄의 숨을 몸 안으로 들이는 일. 한국인의 밥상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계절을 먹고, 몸을 돌보며, 삶을 건너왔다. 쑥국은 결국 국 한 그릇이 아니라, 봄을 맞는 한국인의 오래된 방식이다.
참고 문헌
곽경자. 2026. 달디 달은 눈 맞은 파, 제철 파 효능과 파김치가 만든 건강 밥상.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3-17).
곽경자. 2026. 어머니의 삶의 지혜, 부뚜막 막걸리 식초.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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