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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식초와 갑오징어, 몸을 깨우는 봄의 맛 - 곽경자 이학박사(곽경자 식초담다 대표, 전남도립대학 식품생명과학과 겸…
  • 기사등록 2026-04-01 0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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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봄이 오면 입맛부터 달라진다. 겨울 동안 묵직했던 음식이 조금씩 멀어지고, 가볍고 산뜻한 것을 찾게 된다. 이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맛이 있다. 식초의 신맛이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또렷한 그 맛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다가온다. 식초는 오래전부터 우리 식생활에 함께해 온 재료다.

 

식초는 단순히 신맛을 더하는 조미료가 아니라, 계절을 건너는 방법이기도 했다. 특히 봄에는 그 쓰임이 더 또렷해진다. 겨울을 지나며 떨어진 입맛을 깨우고, 음식의 흐름을 가볍게 만든다. 식초의 또 다른 역할은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고, 재료를 한 번 입맛에 맞게 다듬어 주는 데 있다. 과학적인 설명을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식문화 속에서 이미 생활의 지혜로 자리 잡은 방식이다.

 

내 고향 강진에서도 식초는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막걸리로 식초를 만들어 사용하셨다. 소주 댓병에 담아두고 시간을 들여 익혀낸 식초는 시큼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었다. 우리 집만의 식초 맛을 지녔던 그 식초는 나물, 무침 등에 두루 쓰였고, 봄이 되면 더욱 자주 식탁에 올랐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음식이 있다. 봄날 갑오징어와 미나리를 넣어 무친 초무침이다. 갑오징어는 봄이 되면 연안으로 들어와 가장 맛이 좋을 때인데, 어머니는 갑오징어를 살짝 데쳐 얇게 썰어 향이 살아 있는 미나리에 식초를 더한 초무침으로 만들었다. 식초가 들어가는 순간 갑오징어의 식감은 더 살아나고, 미나리의 향은 한층 향긋해졌다.

 

식초가 중심을 잡아준 이 음식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맛이 있어서 계속 먹었던 기억이 난다. 봄날 식초의 효용은 여기에 있다. 단순히 맛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무거웠던 흐름을 가볍게 바꾸고, 둔해진 감각을 깨운다. 그래서 봄의 음식에는 식초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전라남도의 해안에서 잡히는 도다리, 숭어, 병어, 주꾸미, 낙지 같은 해산물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무침으로 이어질 때 식초가 중심에 놓인다. 재료는 다르지만, 맛의 흐름은 하나로 모인다. 앞에서 맛을 여는 것은 언제나 식초다.

 

식초는 늘 조금 들어가는 재료로 여겨진다. 그러나 봄날의 식탁에서는 다르다. 한 숟가락이 음식 전체를 바꾸고, 계절의 느낌을 또렷하게 만든다. 고향 강진의 봄을 떠올리면, 바다와 함께 식초의 맛이 따라온다. 그리고 그 기억의 중심에는 어머니의 손맛이 있다. 막걸리로 빚어낸 식초, 그리고 갑오징어와 미나리를 버무리던 그 장면이 봄날의 나를 다시 치유하고 있다.

 

그 장면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다. 손으로 버무리던 소리, 식초 향이 올라오던 순간, 식탁에 둘러앉던 시간까지 함께 떠오른다. 그래서 봄의 맛은 입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몸으로 이어지며, 마음으로 남는다. 식초 한 숟가락이 그렇게 계절을 기억하게 한다.

 

참고 문헌

곽경자. 2026. 애탕국의 계절… 쑥과 된장, 굴이 빚은 봄 보약 쑥국.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3-24).

곽경자. 2026. 달디 달은 눈 맞은 파, 제철 파 효능과 파김치가 만든 건강 밥상.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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