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전라남도는 여성농업인 복지와 영농활동 지원을 위해 문화생활, 건강·복지, 보육 분야 등 9개 사업에 348억 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영화관, 서점, 미용실, 스포츠센터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20만 원 바우처를 20세에서 75세 여성농업인 10만7천여 명에게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정책은 현장의 삶을 세심하게 들여다본 결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이러한 지원이 ‘여성’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취약한 농업인’ 혹은 ‘농업인의 생활 조건’ 때문인지는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농촌의 풍경을 떠올려 보면 답은 단순하지 않다. 논과 밭은 여전히 넓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점점 줄고 있다. 그중에는 혼자 농사를 짓는 고령 농업인도 많다. 특히 남성 독거 농업인의 경우, 식사 준비조차 쉽지 않아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고, 병원을 제때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몸이 아파도 대신 일을 맡길 사람이 없어 일을 이어가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라는 기준만으로 지원이 나뉘는 것은 현장의 체감과 어긋나는 지점이 있다.
물론 여성농업인이 겪는 어려움은 분명 존재한다. 임신과 출산, 육아 부담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고, 농업 노동에서도 그 부담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 부분 여성 중심 정책은 필요하다. 문제는 그 틀만으로 농촌의 현실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접근 방식의 차이가 보인다. 일본은 가족경영협약을 통해 여성의 농업 노동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여성 농업인 프로젝트’를 통해 여성 농업인의 참여와 역할을 넓혀가고 있다. 복지 지원을 넘어 농업 경영의 주체로 자리 잡도록 돕는 방식이다. 대만은 농업연금과 농업인 보험 제도를 중심으로 농업인 전체의 생활 안정과 건강을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해 왔다. 특정 성별을 구분하기보다 농업이라는 직업 자체를 기준으로 복지를 설계한 접근이다.
이와 비교해 보면 전남의 여성농업인 지원 정책은 생활 지원 중심이면서 동시에 성별 기준이 강하게 작동하는 구조다. 정책이 촘촘한 것은 분명 장점이지만, 기준이 단일하면 놓치는 대상도 생긴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농촌에서는 성별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따로 있을 수 있다. 건강 상태, 노동 가능 여부, 가족 구성, 돌봄 환경과 같은 요소들이다.
이제는 ‘누가 더 힘든가’가 아니라, ‘누가 더 취약한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같은 여성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고, 같은 남성이라도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정책이 이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면, 지원은 있어도 체감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여성농업인 지원을 줄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정책의 범위를 넓히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강검진이나 농가 도우미 지원은 성별과 관계없이 일정 기준 이상의 취약 농업인에게 확대 적용할 수 있다. 농번기 공동급식 또한 독거 농업인이나 고령 농업인을 함께 포함하는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다. 기준이 넓어질수록 정책의 효율도 함께 높아진다.
농업 정책은 결국 사람을 향한다. 밭의 크기나 생산량보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지금 농촌은 성별보다 더 복합적인 조건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 변화를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면, 현장과 정책 사이의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전남의 농업 정책은 이미 현장 중심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제 그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기준을 성별에서 취약으로 옮기는 일이다. 그 변화가 이루어질 때, 정책은 더 많은 농업인의 삶을 실제로 지탱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6. 전남 농업 실용교육의 사각지대, 외국인 농업노동자.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6.1.8.).
허북구. 2025. 전남 농업 정책, 여성만 있고 남성은 없다.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9.5.).
허북구. 2024. 농촌 노인의 일 중독.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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