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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레빈의 신체기반 트라우마 치유와 치유농업 - 전주기전대학 치유농업과 최연우 교수
  • 기사등록 2026-04-02 08: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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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사람은 생각으로만 상처를 입지 않는다. 몸으로도 상처를 겪는다. 놀란 순간의 숨, 굳어버린 어깨, 이유 없이 빨라지는 심장. 이런 반응은 시간이 지나도 남는다. 기억은 흐려져도 몸은 잊지 않는다.

 

미국의 심리치료사 피터 레빈(Peter A. Levine)은 이 점에 주목했다. 그는 1942년 미국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의학물리학 박사를 받고, 이후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와 임상 현장을 오가며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트라우마를 ‘사건’이 아니라 ‘몸에 남은 반응’으로 보았다. 위협을 겪을 때 몸은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얼어붙는다. 그런데 그 반응이 끝나지 못하고 남으면 문제가 된다. 그래서 그의 치유는 생각을 설득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고, 몸에 남은 반응을 조절하고, 신경계가 다시 안정되도록 돕는 데서 출발한다.

 

이 접근은 소매틱 익스피리언싱(Somatic Experiencing, SE)으로 알려져 있다. 방법은 단순하다. 몸의 감각을 천천히 느끼고, 과도한 긴장을 조금씩 풀어낸다. 한 번에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작은 안정이 반복되면서 몸이 ‘이제는 괜찮다’라는 감각을 다시 배운다.

 

이 관점은 치유농업의 현장과 연결되어 있다. 농장에서는 흙을 만지고, 식물을 돌보고, 햇볕을 받고, 바람을 느끼면서 몸을 사용하게 되고, 이 모든 과정은 몸의 감각을 깨우는 일이다. 흙을 손에 쥐는 순간을 떠올려 보면 된다. 차갑고, 부드럽고, 때로는 거칠다. 그 감각에 집중하는 동안 생각은 잠시 물러나며, 몸과 마음 농장에서 머물게 된다.

 

식물을 돌보는 시간도 비슷하다. 물을 주고, 잎을 살피고, 변화를 기다린다. 빠르게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느린 흐름 속에서 몸의 긴장은 조금씩 완화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자극의 조절이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작은 자극에도 쉽게 흔들리거나, 반대로 아무 느낌이 없기도 하다.

 

그런데 농장에서는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햇빛의 양, 작업의 속도, 참여 시간. 상황에 맞게 줄이고 늘릴 수 있다.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경험을 다시 쌓게 된다. 그래서 치유농업은 특별한 기술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보다 어떤 감각을 느끼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프로그램도 결과보다 과정이 중심이 된다.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만드는 동안 손이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더 중요하다. 설명은 길지 않아도 된다. 잠시 멈추는 시간이 더 도움이 된다. 속도도 늦출 필요가 있다. 치유는 서두를수록 멀어진다. 체험과 체험 사이에 쉬는 시간을 두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허용해야 한다. 참여의 강도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치유농업은 체험을 제공하는 일이 아니라 몸의 감각을 통해 사람을 회복시키는 공간이다. 레빈의 이론은 그것을 설명해 주는 하나의 언어다. 현장에서는 이미 많은 농장이 이 원리를 경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햇볕 아래에서 흙을 만지며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짧은 휴식.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순간. 이런 장면이 쌓일 때 사람은 조금씩 트라우마에서 회복이된다. 치유는 몸이 편안해지는 작은 순간에서 시작된다. 치유농업에서 그 시작은 이미 농장 안에 있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6. 에드워드 손다이크의 효과의 법칙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3.28.).

최연우. 도널드 위니컷과 전이 대상으로 읽는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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