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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농업, 아동기 음식치유 프로그램 설계와 실행 - 전주기전대학 치유농업과 김현주 교수
  • 기사등록 2026-04-06 09: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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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아동기에서 식사는 감정이 가장 쉽게 드러나고, 동시에 가장 빠르게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기분이 좋으면 더 먹고, 불안하면 급히 먹거나 아예 거부하는 모습은 흔하다. 이 시기의 식사는 ‘무엇을 먹는가’ 못지않게 ‘어떻게 먹는가’도 중요하다. 치유농업에서 음식치유를 다룰 때도 출발점은 동일하다. 아이의 감정을 바꾸려 하기보다, 감정과 섭식이 얽히는 흐름을 완만하게 풀어주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농장과 텃밭, 그리고 조리실은 이러한 환경을 구성하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이곳은 여유를 갖고, 관찰과 기다림을 기본으로 하는 장소다. 씨를 뿌리고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며, 수확하고 손질하는 일련의 흐름은 ‘즉각적인 결과’보다 ‘과정의 반복’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한다. 이 반복은 아동의 정서를 안정시키는 하나의 기준점이 된다.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첫째, 평가 언어를 차단하는 것이다. 아이가 얼마나 먹었는지, 빨리 먹었는지, 남겼는지를 두고 칭찬하거나 비교하는 순간, 식사는 다시 긴장과 경쟁의 장으로 변한다. 음식치유 프로그램에서 식사는 성과를 확인하는 시간이 아니라, 안전하게 반복되는 시간이어야 한다. 아무 말 없이 먹을 수 있고, 남겨도 괜찮으며, 속도가 달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환경이 유지될 때 아이는 식사 장면에서 긴장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두 번째는 전환 구간의 설정이다. 먹기 직전의 짧은 시간, 예를 들어 5분에서 15분 정도의 손질과 담기, 온도 확인의 과정을 매회 동일하게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 짧은 준비 과정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감정이 급격히 식사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완충 지대가 된다. 아이가 불안하거나 짜증이 난 상태에서도 바로 먹는 행동으로 넘어가지 않고, 손을 움직이며 호흡을 고르는 시간을 갖게 된다. 반복되는 이 구간은 점차 정서와 행동 사이의 간격을 만들어 준다.

 

세 번째는 미세 선택권의 제공이다. 많은 경우 선택은 부담이 되거나 통제 욕구를 자극한다고 생각하지만, 작은 선택은 오히려 자기조절을 배우는 기회가 된다. 음식의 양을 조금 줄이거나 늘리는 것, 따뜻하게 먹을지 식혀서 먹을지, 간을 조금 더할지 그대로 둘지와 같은 사소한 선택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을 때 의미를 가진다. 이 선택이 반복되면 아이는 감정에 따라 자동적으로 먹는 대신, 스스로 조절하는 경험을 쌓게 된다.

 

네 번째는 공동체 규칙이다. 치유농업의 음식 프로그램은 여러 아이가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규칙을 엄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침묵을 허용하고, 남김을 허용하며, 각자의 속도를 인정하는 규칙은 비교에서 오는 불안을 낮춘다. 특히 성장기에는 또래와의 비교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이 긴장을 낮추는 것이 안정적인 참여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이다.

  

이러한 설계는 실행 과정과도 연계되어야 한다. 프로그램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를 판단할 때 흔히 범하는 오류는 ‘아이들이 즐거워했는가’ 혹은 ‘얼마나 잘 먹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물론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음식치유의 효과를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식사 리듬이 안정되는가이다. 식사 시간이 일정하게 확보되는지, 급하게 먹는 행동이 줄어드는지, 씹고 멈추는 순간이 늘어나는지가 더 중요한 지표다.

 

또 하나의 기준은 감정이 촉발되는 순간의 변화다. 이전에는 불안하거나 화가 날 때 곧바로 먹는 행동으로 이어졌다면, 프로그램 이후에는 그 사이에 잠시 멈추는 시간이 생기는지, 혹은 먹다가도 다시 조절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는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정서 조절의 변화에 가깝다.

 

선택과 조절 행동의 증가도 중요한 평가 지점이다. 스스로 양을 조절하고, 속도를 조절하며, 남길 수 있는 선택을 하는 모습은 아이가 점차 식사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조절 가능한 행위’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공동체 속에서의 안정감, 즉 비교 불안이 줄어들고 각자의 방식으로 식사에 참여하는 모습이 유지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따라서 치유농업에서 아동기의 음식치유 프로그램은 특별한 음식을 제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흔들려도 식사 흐름이 이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반복되는 리듬, 작은 선택, 관대한 규칙이 쌓이면서 아이는 먹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조절하는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 이 경험은 식탁을 넘어 일상으로 확장된다.

 

음식은 몸으로 들어가지만, 그 과정은 마음의 방식으로 남는다. 치유농업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은 바로 이 과정 전체를 다루는 데 있다. 식사를 통해 아이가 스스로를 다루는 법을 배울 때, 음식은 단순한 섭취를 넘어 삶의 리듬을 만드는 도구가 된다.

 

참고문헌

김현주. 2026. 치유농업과 산림치유 그리고 음식치유의 치유음식.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03-30).

김현주. 2026. 치유농업의 마지막 고리, 음식치유.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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