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국권을 빼앗긴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지만, 이름조차 역사 속에 희미하게 남겨진 한 고려인 독립운동가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고 있다.‘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공동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을 통해 스물한 번째 인물인 김성백(金成伯·1878~미상) 선생의 삶과 항일 독립운동 정신을 재조명한다고 밝혔다.
특히 김성백 선생은 2016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아 독립유공자로 서훈됐지만, 현재까지 후손이 확인되지 않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에 광주 고려인마을과 고려신문은 선생의 숭고한 삶과 독립운동 업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한편, 잊혀진 후손 찾기와 명예 회복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1878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난 김성백 선생은 일제강점기 국권회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대표적인 고려인 독립운동가다. 그는 김성백(金星伯·金成白), 치혼 이와노위츄 킴 등의 이름으로도 활동하며 만주와 러시아 일대를 무대로 항일운동에 헌신했다.
선생은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대한공립회를 조직한 뒤, 같은 해 미주 대한인국민회의 인준을 받아 국민회 하얼빈지방회로 개편하며 만주지역 항일운동의 중심축을 세웠다.
당시 그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의거와 연루된 인물로 일제의 감시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조국 독립을 향한 뜨거운 열망은 이미 일제에게 가장 경계해야 할 존재로 각인됐던 셈이다.
1910년 하얼빈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된 김성백 선생은 재러 한인사회의 단합과 민족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동흥학교 교장으로 활동하며 한인 자녀들에게 민족의식과 조국 사랑을 가르쳤고, 횡도하자와 목릉 등지에 국민회 지방회를 조직하며 독립운동 세력을 넓혀갔다.
이후 만주지역 8개 지방회를 총괄하는 대한인국민회 만주리아지방총회 총회장으로 선출된 선생은 조직적인 항일운동 체계를 구축하며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끊임없는 탄압과 망명의 연속이었다. 1912년 일본의 실력자 가츠라 타로 암살 계획 혐의로 러시아 관헌에 체포돼 이르쿠츠크로 추방되는 고초를 겪었지만, 선생은 끝내 독립의 뜻을 꺾지 않았다.
1920년에는 이르쿠츠크 조선인민회 찬성원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거액인 10만 루블을 지원했고, 1921년에는 러시아 치타의 극동공화국 정부 한인부에서 활동하며 조국 독립을 위한 투쟁을 이어갔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김성백 선생은 이름도, 기록도 제대로 남지 못한 채 조국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고려인 선조들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며 “후손조차 아직 확인되지 못한 현실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바로 세워야 할 역사적 과제”라고 밝혔다.
이어 “광주 고려인마을과 고려신문은 앞으로도 연해주와 중앙아시아 곳곳에 흩어진 고려인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발굴하고, 잊혀진 후손 찾기와 명예 회복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고려방송: 안엘레나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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