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인류는 곡물을 재배하면서 빵과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쌀과 밀, 보리 등의 곡물에 누룩을 더해 막걸리를 빚었고, 그 과정에서 독특한 발효문화가 발전했다. 막걸리는 가장 오래된 전통주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오늘날까지 일상 속에서 이어지는 살아 있는 발효식품이다.
고된 농사일로 지친 몸을 달래고, 이웃과 마음을 나누며 다시 일어설 힘을 주던 공동체의 음식이기도 하다. 농번기 들녘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누면 힘겨운 노동도 흥이 되었고,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끈끈한 농심이 살아났다. 그 막걸리의 시작은 누룩빚는데서부터 시작한다.
1916년 주세령이 시행된 이후 양조 면허 없는 가양주(家釀酒)는 밀주로 취급됐다. 이후 오랫동안 세무서 직원과 단속반이 농촌 마을을 돌며 누룩과 술항아리를 찾아 압수했다. 집집마다 전해오던 술 빚는 법인 ‘주방문(酒方文)’마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들은 술을 포기하지 않았다. 단속을 피하는 방법까지 말없이 익히고 다음 세대로 전했다.
마을 어귀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아이들이 먼저 집과 들녘으로 달려가 소식을 알렸다. 언제였는지 모를일이지만 마을에서 망을 보던 아이가 눈을 꼭 감고 길바닥에 엎드려 “단속반 안 보인다”라고 크게 외치기만 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로 단속반에 대한 경계령을 어른들은 애들에게 가르쳤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 시절 누룩과 술항아리를 지키는 일은 한 집안만의 일이 아니라 온 마을의 일이었다.
제사가 잦은 큰집에서는 우산각 바닥을 파 토굴을 만들고 술항아리를 묻었다. 누룩은 두엄더미 속에 넣어 띄우기도 했다. 아무리 집요한 단속반도 냄새가 심한 두엄더미까지 헤집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벽장과 다락, 볏짚과 땔나무가 쌓인 헛간, 쌀가마 뒤, 아궁이 옆, 부엌 바닥, 외양간과 장독대 사이도 누룩과 술을 지켜낸 비밀 장소였다.
나의 어머니도 부엌 나무더미 아래에서 누룩을 빚었다고 했다. 아랫목에서 술밥을 식히면 작은오빠와 나는 몰래 술밥을 집어 먹었다. 어머니는 모르는 척 눈감아 주었지만 부엌에는 아무나 들이지 않았다. 부엌 한쪽에는 식초항아리와 식초병, 하얀 성주잔이 놓여 있었다. 자식들의 생일이면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성주상 앞에서 건강과 안녕을 간절하게 빌던 모습은 한 장의 사진처럼 남았다.
어머니의 술과 식초에는 발효 기술만 담긴 것이 아니었다. 가족을 지키려는 기도와 정성,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 이웃과 나누는 공동체 정신이 함께 발효되고 있었다. 오늘날 내가 현미로 식초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누룩 빚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가 지켜낸 식초항아리와 누룩의 기억이 내 삶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와 앉았다고 믿는다.
나는 전통을 단순히 옛 방식으로 재현하는 데 그치고 싶지 않다. 누룩과 술에 담긴 정서, 어머니의 단정한 손길, 서로를 지켜주던 마을의 마음까지 되살리고 싶다. AI가 세상을 바꾸는 시대이지만, 오래된 누룩 한 덩이가 품은 생명과 기다림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지고 있다.
금주령의 서슬도 끊어내지 못한 누룩의 생명력. 그것은 우리 어머니들이 지켜낸 K-발효문화의 뿌리이자, 우리가 다시 기억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제 그 누룩 속에 숨겨진 사람과 마을, 발효와 식초 이야기를 매회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참고문헌
곽경자. 2026. 저속노화를 담은 한 그릇, 여름 별미 서리태 콩국수.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7-14).
곽경자. 2026. 바다의 향을 발효로 차리는 밥상, 꽃게장.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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