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치유농업에서는 식물과 동물, 흙과 햇빛, 바람 같은 자연환경을 치유자원으로 활용한다. 농장에서 씨앗을 뿌리고 식물을 가꾸며 동물을 돌보는 활동은 사람에게 정서적 안정과 신체활동, 사회적 관계 형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자연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치유농업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인물이 제인 구달(Jane Goodall, 1934~2025)이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제인 구달은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연구자로 출발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프리카의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케냐로 건너갔고,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Louis Leakey)의 도움으로 1960년 곰베(현재의 탄자니아)에서 야생 침팬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침팬지가 나뭇가지를 이용해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바라보는 당시의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연구와 환경운동을 통해 인간과 동물, 자연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했다.
구달의 활동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관계’이다. 그는 침팬지를 오랜 시간 같은 공간에서 관찰하면서 각각의 개체가 지닌 행동과 관계에 주목했다. 오랜 기간 같은 공간에서 침팬지를 관찰한 그의 연구는 개별 동물의 행동뿐 아니라 개체 간 관계와 그것이 이루어지는 환경을 함께 살펴보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치유농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치유농장의 식물은 프로그램 시간에 잠시 사용하는 재료가 아니라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잎과 꽃이 자라며,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을 남기는 생명이다. 참여자가 이 과정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면 식물을 돌보는 행위 속에서 기다림과 책임, 변화의 시간을 체험하게 된다. 오늘 물을 준 식물이 내일 조금 자라고, 며칠 뒤 꽃을 피우는 모습은 사람과 자연 사이에 관계를 만든다.
동물을 활용하는 치유농업도 마찬가지이다. 토끼나 닭, 염소, 말과 함께하는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동물을 만지고 먹이를 주는 체험의 횟수만이 아니라 동물의 습성과 행동을 이해하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돌보는 과정이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참여자는 자신의 행동에 따라 다른 생명체가 반응한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배려와 책임감, 생명에 대한 존중을 배우는 과정이 치유활동과 연결될 수 있다.
구달이 강조해 온 또 하나의 가치는 인간의 삶과 자연환경을 하나의 관계망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야생동물을 보호하려면 숲과 지역주민의 생활, 교육과 경제활동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활동에서 드러난다. 1991년 탄자니아에서 시작한 ‘루츠 앤 슈츠(Roots & Shoots)’ 역시 젊은 세대가 사람과 동물, 환경을 함께 생각하고 지역에서 직접 행동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치유농장에도 이러한 관계망이 존재한다. 농장주와 참여자뿐만 아니라 식물과 동물, 토양, 곤충, 미생물, 지역주민과 주변 농가가 함께 연결되어 있다. 농장에서 사용하는 농법과 자재, 식물을 관리하는 방식, 동물을 대하는 태도, 폐기물을 처리하는 방법까지 치유농장의 성격을 만든다. 사람에게 편안한 공간이면서 다른 생명에게도 건강한 환경이 될 때 공존이라는 가치는 농장 운영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갖게 된다.
프로그램의 구성도 공존의 관점에서 넓혀 볼 수 있다. 꽃을 수확해 작품을 만드는 활동에 식물을 재배하고 관찰하는 과정을 연결하고, 텃밭 활동에 토양생물과 곤충을 살펴보는 경험을 더할 수 있다. 수확하고 남은 식물은 퇴비나 공예재료로 활용하고, 토종식물과 지역의 생태자원을 프로그램에 접목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경험은 참여자가 자연으로부터 무엇을 얻는가와 함께 자연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제인 구달은 생애 후반까지 희망과 행동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의 메시지에서 희망은 각자의 자리에서 선택하고 행동하는 데 가까웠다. 치유농업 역시 농장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그런 행동을 실천할 수 있다. 씨앗 하나를 심고, 식물을 정성껏 돌보고, 동물의 습성을 존중하며, 흙으로 유기물을 되돌려 보내는 일들이 그 출발점이 된다.
치유농업에서 자연은 사람의 치유를 위한 배경이 아니다. 사람 또한 농장의 생태계에 참여하는 하나의 구성원이다. 사람이 자연을 돌보는 과정에서 자연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사람도 위로와 활력을 얻는다. 제인 구달이 평생 보여준 공존의 시선은 치유농업이 사람과 자연이 서로 돌보는 농장으로 성장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된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6. 케이트 라워스에게 배우는 순환경제와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9.16.)
최연우. 2026. 린 마굴리스에게 배우는 공생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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