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공동 추진하는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의 서른두 번째 인물로 독립유공자 리주연(1882~미상) 선생의 항일독립운동 행적을 재조명하며 후손 찾기에 나섰다.
2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리주연 선생은 1882년 1월 1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소학교 수준의 교육을 받은 뒤 농업에 종사했으며, 러시아 지역으로 이주한 정확한 시점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리 선생은 1920년 4월께 자유시(自由市·현 러시아 아무르주 스보보드니)에서 공산당에 입당하고 한인 독립군 부대에 입대해 항일무장투쟁에 뛰어들었다. 당시 러시아와 만주 일대에서는 3·1운동 이후 활동하던 여러 한인 독립군 세력이 연합과 통합을 모색하며 무장투쟁 역량을 결집하고 있었다.
1921년 3월 중순 코민테른 극동비서부가 임시고려혁명군정의회를 결성한 데 이어 같은 해 5월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창립대회 이후 고려혁명군정의회가 정식 조직됐다.
고려혁명군정의회는 같은 해 6월 초 이르쿠츠크에서 자유시로 이동해 한인군사위원회 산하 대한의용군과 통합을 추진했다. 그러나 군 통합의 주도권과 지휘체계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됐고, 대한의용군에 대한 강제 무장해제 과정에서 자유시참변이 발생했다.
자유시참변 이후 고려혁명군 지휘부는 한·중 국경지대로 진출해 일본 세력을 상대로 항일무장투쟁을 이어갈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코민테른 극동비서부의 반대로 계획이 좌절되면서 고려혁명군은 1921년 8월 자유시를 떠나 이르쿠츠크로 이동했다.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고려혁명군은 즉각적인 국경지대 진출이 어려워지자 후방에서 군사·정치훈련을 실시하며 독립전쟁을 위한 역량 강화에 나섰다.
이후 고려혁명군은 1개 여단으로 재편됐으며 예하 전투부대로 제1·3연대가 편성됐다. 제3연대에는 한인보병자유대대를 비롯해 홍범도가 지휘한 대한독립군과 안무가 이끈 북간도국민회군 등 주요 한인 무장세력이 참여했다.
리주연 선생도 이 과정에서 고려혁명군 제3연대 소속 부관으로 활동하며 항일무장세력의 조직과 군사활동에 참여했다.
1922년 하반기 고려혁명군은 연해주 지역 전투에 참여했으며, 러시아 내전이 끝난 뒤 소비에트 러시아 당국의 비정규 무장부대 해산 방침에 따라 해체됐다. 일부 대원들은 이후 러시아 적군에 정식 편입돼 재소 한인들로 구성된 부대의 기반이 됐다.
리 선생의 이후 행적과 사망 시기, 가족관계 등은 현재까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어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려혁명군에 입대해 항일독립운동에 헌신한 리주연 선생의 공훈을 인정해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 관련 자료에는 관리번호 953238로 등재돼 있으며, 1920년 4월 자유시에서 고려혁명군에 입영해 이듬해 제3연대 제4중대 부관으로 활동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리주연 선생은 자유시와 이르쿠츠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독립군 통합과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한 인물”이라며 “아직 가족과 후손의 행적이 확인되지 않은 만큼 고려신문과 국내외 고려인사회를 통해 관련 자료와 후손을 지속적으로 찾아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광주 고려인마을은 고려신문과 함께 러시아 연해주와 시베리아 등지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활동했지만 후손이 확인되지 않은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공적을 알리고 후손을 찾는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고려방송: 안엘레나(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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