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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나 시바 종자와 치유농업 - 전주기전대학 치유농업과 최연우 교수
  • 기사등록 2026-10-06 08: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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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치유농업에서는 씨앗을 뿌리고 싹을 기다리는 활동이 자주 활용된다. 작은 씨앗을 손으로 만지고 흙에 심은 뒤 물을 주면서 변화를 관찰하는 과정은 참여자에게 기다림과 기대, 돌봄의 경험을 제공한다. 싹이 나고 잎이 자라 꽃과 열매를 맺는 모습에서는 생명의 변화를 직접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치유농업에서 사용하는 종자를 단순한 재배 재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과 문화, 공동체를 이어 주는 자원으로 바라본다면 종자 활동의 의미는 더욱 풍부해진다. 이와 관련해 생각해 볼 인물이 인도의 환경운동가이자 학자인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 1952~)이다.

  

반다나 시바는 물리학을 공부하고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학교에서 양자이론을 주제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과학·기술·환경정책 분야로 연구 영역을 넓혔다. 이후 생물다양성 보전과 농민의 종자 권리를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 왔다. 1987년에는 종자를 보존하고 농민이 종자를 지키고 나누는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으며, 이를 바탕으로 나브다냐(Navdanya) 운동을 발전시켰다. 1991년에는 종자를 저장하고 공유할 농민의 권리를 강조하는 ‘종자 사티아그라하(Seed Satyagraha)’를 전국적인 운동으로 전개하였다. ‘나브다냐’는 ‘아홉 개의 씨앗’을 뜻하며 생물학적·문화적 다양성의 보호를 상징한다.

  

반다나 시바가 종자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종자를 생명과 다양성, 지식과 문화가 이어지는 매개로 본다는 점이다. 나브다냐에서도 종자 보존을 생물다양성뿐만 아니라 종자에 관한 지식과 이용법, 문화와 지속가능성을 함께 보전하는 활동으로 설명한다. 농민들은 오랜 세월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한 종자를 선택하고 재배하며 다음 세대로 전해 왔다. 따라서 토종종자에는 식물의 유전적 특성과 함께 지역의 농사 경험과 음식, 생활문화가 축적되어 있다.

  

이러한 시각을 치유농업에 적용하면 종자를 활용하는 프로그램도 다양해질 수 있다. 치유농장에서 이루어지는 씨앗 심기는 파종과 발아, 재배와 수확이라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활동이다. 여기에 종자의 유래와 사람들의 기억을 더하면 프로그램의 내용이 풍부해진다. 할머니가 재배했던 콩, 고향에서 먹었던 옥수수, 어린 시절 텃밭에서 보았던 봉숭아와 해바라기 같은 씨앗은 개인의 기억을 불러오는 소재가 될 수 있다. 씨앗을 보고 만지며 과거의 농사와 음식, 가족에 관한 경험을 이야기하면 회상과 대화, 세대 간 교류로 이어질 수 있다.

  

종자의 다양성도 치유농업에서는 좋은 자원이 된다. 씨앗은 종류에 따라 크기와 형태, 색깔, 무게와 촉감이 다르다. 콩과 팥, 옥수수, 벼, 수수, 조, 해바라기 등의 종자를 관찰하고 분류하며 손으로 만져 보는 활동은 시각과 촉각을 활용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할 수 있다. 여러 종자 가운데 자신이 기르고 싶은 씨앗을 직접 선택하고 이름표를 붙이는 과정에는 선택과 결정의 경험이 포함된다. 이후 발아와 성장을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식물을 지속적으로 돌보는 활동으로 연결할 수 있다.

  

종자를 직접 받는 채종 과정은 씨앗 심기와는 또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치유농장에서 식물을 길러 열매를 수확한 뒤 일부를 남겨 종자를 받으면 농사의 순환을 경험하게 된다. 봄에 한 알의 씨앗을 심어 식물을 기르고, 그 식물에서 다시 여러 개의 씨앗을 얻는 과정은 생명의 순환을 눈으로 확인하게 한다. 참여자가 직접 받은 종자를 봉투에 담아 작물 이름과 채종 날짜를 기록하고 다음 파종 때까지 보관한다면 한 해의 활동이 다음 해의 농사로 이어진다.

  

토종종자는 지역 공동체와 연결하는 프로그램에도 활용할 수 있다. 지역 어르신에게 옛날에 재배했던 작물과 종자, 재배법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어린 세대가 함께 씨앗을 심고 가꾸는 방식이다. 수확한 작물로 지역 음식을 만들어 보는 활동까지 연결하면 종자에서 재배, 수확, 음식, 기억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 치유농장은 사람의 치유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면서 지역의 농업생물다양성과 생활문화를 경험하고 전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생물다양성을 강조해 온 반다나 시바의 활동은 치유농장의 작물 구성에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여러 종류와 품종의 식물을 재배하면 농장에는 다양한 색과 형태, 향기와 계절의 변화가 나타난다. 참여자는 같은 날 심은 씨앗이라도 발아하는 시기와 자라는 모습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관찰하게 된다. 빨리 자라는 식물이 있고 천천히 성장하는 식물이 있으며 꽃과 열매의 모습도 제각각이다. 서로 다른 생명이 각자의 방식과 속도로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경험 자체가 치유농업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치유농업에서 종자는 크기는 작지만 활용 범위가 매우 넓다. 씨앗을 고르고, 심고, 기다리고, 돌보고, 수확하고, 다시 종자를 받는 과정에는 감각활동과 돌봄, 회상과 관계 형성, 생명의 순환이 담겨 있다. 여기에 토종종자와 지역의 농업문화, 생물다양성이라는 가치를 더하면 종자를 활용한 치유농업의 영역은 더욱 넓어진다. 반다나 시바가 오랫동안 강조해 온 종자와 생물다양성의 가치는 치유농업에서도 씨앗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한 알의 씨앗을 심고 다음 세대의 씨앗을 받는 일은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고, 한 세대의 기억을 다음 세대로 이어 주는 의미 있는 농업활동이 될 수 있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6. 제인 구달에게 배우는 공존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9.22.) 

최연우. 2026. 케이트 라워스에게 배우는 순환경제와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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