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철 대한노인회 제주시지회 꿈에그린 3단지 노인회장·수필가[전남인터넷신문]노인의 날 아침, 경로당 문을 열자 귤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회원 한 분이 밭에서 따 왔다며 한 상자를 내려놓고 갔다. 아직 푸른 기가 덜 가신 귤이었다. 둘러앉아 껍질을 까는데, 누군가 올해는 허리가 아파 귤밭에 몇 번 못 나갔다고 했다. 옆에 앉은 이는 손이 떨려 이제 바늘귀를 못 꿴다고 웃었다. 다들 따라 웃었지만, 그 웃음 끝이 조금씩 젖어 있었다.
늙는다는 것은 할 수 있던 일을 하나씩 내려놓는 일이다. 처음엔 뛰는 것을, 그다음엔 계단을, 나중엔 혼자 일어나는 것까지. 우리는 그것을 서로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쓰면서, 또 서로의 것을 모른 척 다 알면서 산다.
그날 밤 늦게 뉴스를 보다가 한 이름에서 눈이 멈췄다. 신천지예수교회 이만희 총회장. 아흔다섯이라고 했다. 척추를 다쳐 거동이 어렵고, 재판을 받는 몸이라 병원과 수용시설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다고 했다. 낮에 귤을 까던 회원들의 손이 떠올랐다. 그보다 열 살, 스무 살 아래인 우리도 이렇게 하루하루가 버거운데.
그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아흔다섯이라는 나이의 무게뿐이다.
그 나이의 몸은 유리그릇 같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작은 충격 하나에 금이 간다. 그리고 금이 간 자리는 좀처럼 다시 붙지 않는다. 그래서 그 나이에 가장 필요한 것은 큰 수술이나 좋은 약보다, 익숙한 손길이 끊기지 않는 것이다. 어제 본 의사가 오늘도 보고, 어제 누운 자리에 오늘도 눕는 것. 그런 평범한 이어짐이 늙은 몸을 하루 더 버티게 한다.
그런데 그는 얼마간 나와 치료를 받다가, 기한이 차면 다시 돌아가야 했다고 한다. 겨우 몸이 자리를 잡을 만하면 다시 처음으로. 그 반복이 아흔다섯의 몸에 어떻게 남을지, 나는 차마 다 헤아리지 못하겠다.
그래서 청한다. 법원이 그의 보석을 허가해 주었으면 한다. 재판을 멈추자는 것이 아니다. 법정에는 법정의 시간이 있다. 다만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 노인이 끊기지 않는 치료 속에서 남은 날을 견딜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재판에 성실히 나오겠다는 약속은 얼마든지 받아둘 수 있지 않은가.
노인의 날, 왜 하필 이런 글을 쓰는지 물을 이가 있을 것이다.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밖에 답하지 못한다. 그가 누구여서가 아니라, 그가 아흔다섯이어서라고. 귤을 까다 손을 떨던 우리 회원들처럼, 그도 그저 늙고 아픈 한 사람이어서라고.
노인의 날이 생긴 지 올해로 서른 해다. 그동안 우리는 어른을 공경하자는 말을 수없이 해 왔다. 그 말이 경로당 문턱을 넘어 병원으로, 법정으로, 높은 담장 안으로까지 닿았으면 좋겠다. 늙은 몸은 어디에 있든 같은 무게로 아프니까.
곧 제주에도 찬바람이 불 것이다. 아흔다섯의 겨울은 우리가 아는 겨울보다 훨씬 춥다. 그 겨울이 오기 전에, 재판부가 따뜻한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기사의 무단 전제나 복제를 금합니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jnnews.co.kr/news/view.php?idx=434077
프로필은 기사 하단에 위의 사진과 함께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