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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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 당신의 말은 입은 열지 않고 눈을 보는 것이다할 말이 없어서도 할 말이 있어서도 아닌 지켜보는 것 너무 많은 것을 겪은 당신은 늘 다르게 흐르는 세상살이를 잡아두려 하지 않았다물길이 흐르는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삶을 세웠다막걸리에 콜라를 타서새끼손가락으로 휘리릭 저어쭈~욱 한 잔 들이키는 것으로 맘을 삭혔다 마지막 길에서... 2021-01-28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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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비 뼈저리도록 시리던 칼바람은 잠시 주춤하고 혹여 설마 설마 하면서도 이토록 훈훈한 바람이겨우내 차돌처럼 굳은 가슴에 살포시 와 닿는데이 시련이 마지막의 진통이기를 바라는 나의 환상일지는 모르지만 자꾸만 머릿결을 파고들어어리 숙한 뇌리를 때려오네 섬뜩하게 젖어드는 한 방울 또 한 방울 온 종일 잠에 취한 영혼을 괘종시계 바... 2021-01-23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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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어느 봄날 바람꽃 같은 사랑이리로 저리로 그저 흔들리다가 한 잎씩 떨어져제 짝 찾아 날아간다 희주 영신 소애꽃말 같은 이름들 한 번씩 불러 보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고이 접은 쪽지분명 반송될 걸 알면서도바람에 실어 보내고파 설레이며 만들었던 바람꽃 다발아리따워 사무치는 기억을 타고 다시 돌아와 내 봄을 깨우누나 2021-01-22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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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무리 옆 별과 눈물/김혜자 별이어도 좋습니다 서쪽 하늘 끝에 홀로 떴다 홀로 지는 그런 외로운 개밥바라기 바람이어도 좋습니다 고향의 빈집에 들러 해당화 자목련 동백향을 전해주는 속삭임 같은 실바람 풀꽃이어도 좋습니다 깊은 산골 후미진 곳 외롭게 피었다가 소식도 없이 사라지는 이름 없는 풀꽃 하지만, 눈물은... 2020-08-19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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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소리/李順姬 풍경은 직립일 때 울지 않는다 별빛에 찬찬히 감기거나 달빛에 둥글게 깎일 때 운다 소녀였을 때 어머니는 온실에서 살 듯 여려서 쓰겠냐며 탱자나무에서 우는 가시나무 새의 가슴을 보라셨다 동짓달 우우우 생의 찬바람이 문풍지와 함께 파닥일 때도 내 몸은 봄 쪽으로 기울이며 풍경 소리를 낸다 ... 2020-08-18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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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되감다 / 이순애 꿋꿋한 햇살을 업은 내소사에서 젖은 기억을 풀었다 어둠이 어깨위로 내려앉기 까진 내변산 직소폭포를 보고 싶었다 거뭇한 직소포의 거칠어진 잎새는 여전했지만 폐경을 맞이한 여인처럼 물줄기가 야위었다 배춧잎 같이 속으로 푸르게 직소 보는 깊어지고 어쩌다, 사랑은 한번은 찾아오는 화사한 ... 2020-08-17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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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광장 동상 옆에 앉아서/이종숙 중앙공원에 바람 쐬러 나오신 당신 옆에 앉아 어깨에 앉은 먼지도 좀 털어드리고 티슈로 얼굴도 닦아드리면서 요즘 남북이 이러저러하다고 물가가 너무 올라 장보기가가 무섭다고 무서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참을 주절거리다가 늦게사 그곳에선 잘 계시냐고 안부를 여쭙는 내게 특유의 투박한 말투로... 2020-08-15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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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桃原)에서 복룡(伏龍)을 보다/김경애 밀물이 현을 켰지요 썰물도 현을 켰어요 당신은 꿈틀거렸나요 발톱을 불끈 쥐고 내밀었나요 바람 불 때마다 큰비 올 때마다 복숭아꽃 진 자리에 서서 날아오르기를 해안선을 박차고 당신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기를 꿈꾸었지요 푸른 바다를 누르고 한없이 열린 허공의 길을 따라 유달산을 넘으면, ... 2020-08-12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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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비행기-스웨터를 벗으며/황성용 그러면 영정은 외우고 또 외워 가벼워진 승천가로 느릿느릿 걸어오는 엄마를 부른다 엄마의 철 매듭 머릿수건 벗는다 백 번의, 한 번의, 천 번의 울타리 질끈 동여매는 동작이 아니니 그건 양념감으로 합쳐지면 오롯이 부드러워지게 하는 유훈 노루가 하늘을 바라보다 연못에 들켜 화들짝 더 ... 2020-08-11 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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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 조기호 돌, 차갑다 한다. 그러므로 무심히 밟고 지나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잠시 엉덩이를 걸치고 콧노래라도 불러주면 당신이 앉았다 간 시간만큼 돌도 금방 따스해진다는 것을. 2020-08-10 김동국